쌍둥이 적자 '지구촌 거인' 집어삼키나

김유림 기자 2008.07.3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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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미국-2]사상최대 재정·무역적자 큰 부담

미국 발(發) 금융 위기 쓰나미가 전세계 경제를 덮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내부는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쌍둥이(재정+무역) 적자로 속빈 강정이 되고 있다. 자칫 작은 종기하나가 '거인' 미국을 쓰러트릴 종양으로 변질될 우려마저 커진다.

미국의 무역 적자는 미국인들이 주택, 금융 버블에 따른 자산 효과를 누리며 소비를 무분별하게 늘린 탓에 이미 돌이키기 힘든 수준이 됐다. 또 부시 행정부가 감세책과 9.11사태에 따른 대테러전에 몰입하며 악화한 재정적자가 사상최대로 예상되며 우려는 기우가 아닌 현실이 됐다.
게다가 주택시장과 금융권의 침체는 아직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아 얼마나 더 많은 국민 혈세와 자금이 필요할지 가늠조차 못해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경제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심화되는 시기에 달러 가치가 폭락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서브프라임이라는 모랄해저드까지 더해지면서 미국 경제는 사상 유례없는 고통과 혼돈의 시간을 맞고 있다.
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경제 질서가 붕괴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 부시 임기중 미 쌍둥이 적자 심화



부시의 감세정책으로 계속 증가세를 보인 재정적자는 내년 사상최대로 불어날 전망이다. 미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2008회계연도(2007년10월~2008년9월)에 3890억달러를 기록한 뒤 2009회계연도에 사상 최대인 482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전 최고치였던 2004년의 4130억달러 적자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부시는 전임 클린턴 대통령이 98년부터 퇴임까지 3년째 이뤄놨던 흑자재정으로 2001년 임기를 시작했지만 결국 사상 최악의 적자 가계부를 차기 정부에 물려주고 떠나게 됐다. 결국 레이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경기 활력을 핑계로 재정적자만 불려놨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레이건은 '별들의 전쟁(Star Wars) 계획'을 추진, 국방비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놨었다. 당시 현 부시대통령의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부통령이었다.


암울한 것은 사상 최대인 내년 재정적자 전망치가 더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먼저 수천억달러를 쏟아부은 이라크와 아프간전쟁에 추가로 투입됐거나 예정된 전비가 아직 완전히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 비용으로 지금까지 무려 6480억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8년 수준으로 환산한 베트남전 비용 6860억달러에 육박한다. 이미 한국전쟁 비용은 뛰넘었지만 그 끝은 아직도 모르는 깊은 재정의 수렁이 되고 있다.



역시 추가 투입 가능성이 높은 경기부양 예산 500억달러(전망치)도 제외돼 있다. 이번주 부시의 승인절차만 남겨놓고 있는 주택시장 지원 법안도 추가 예산을 필요로 한다. 그나마 주택시장이 더 나빠지지 않아 재정 지출이 더 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이에 반해 경기 침체로 가계와 기업 소득이 줄어 세수 역시 당초 전망 보다 줄어들게 확실시된다.

하지만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내년 재정적자 비율은 3.3%에 그쳐 80년대나 90년대 초반에 비하면 최악은 아니다. 1983년 당시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6%에 달했다.

사상 최악의 적자 가계부로 새 살림을 시작할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더라도 힘든 상황을 맞을 수 밖에 없게 됐다.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는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 큰틀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선거 공약이고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는 보건과 교육 등 사회복지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적자 가계부로는 둘다 엄두도 못 낼 처지다.



무역적자가 이끄는 경상적자도 부시 취임 해인 2001년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무역적자는 지난해 6년만에 처음으로 적자폭이 감소했지만 2001년 3651억달러에 달하던 적자 규모가 2007년 7085억달러로 거의 배 가까이 늘었다.

문제는 달러 약세가 거의 6년째 지속되고 있는데 반해 무역적자가 개선될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석유 수입 급증이 무역적자 확대를 주도한 면이 있지만 저축률이 매우 낮고 소비 중심인 미국식 생활패턴과도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미국은 무역적자 개선을 위해 중국에 지속적으로 위안화 절상 압력을 넣고 있다.

◇ 쌍둥이 적자 달러 약세 부추긴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쌍둥이적자)가 동시에 심화되는 시기에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1973년 변동환율제 이후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일년과 1994년의 초엔고 현상, 2004년의 달러 폭락 시기에는 쌍둥이 적자가 심화됐던 시기와 맞물린다는 주장이다.

감세와 이라크전에 주력한 부시 대통령 임기말에 쌍둥이적자가 심화되면서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다.

달러는 지난 2002년부터 유로화나 캐나다 달러 등 주요 선진국 통화에 대해 약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약세는 아시아, 중동 국가 등 지역과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 우려되고 있다.



클린턴 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회장은 달러화 약세가 부시 정부의 견고하지 못한(unsound) 재정정책에서 비롯됐으며 결과적으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정책에 부담을 안겼다고 비판했다.

루빈은 "부시 정부의 견고치 못한 재정정책이 달러화 가치를 훼손했다"면서 "연준이 금리 정책을 결정하는데 추가적인 부담과 문제를 안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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