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전세값에 서울서 쫓겨날판"

머니투데이 이규창 기자 2008.07.29 09:33
글자크기

2008년 7월 당신은…(4) 구로동 전세사는 4년차 직장인

"뛰는 전세값에 서울서 쫓겨날판"


이순영(30·가명·여)씨는 서울 구로동에 살고있는 '서민'이다. 중산층이었거나 중산층으로 착각한 적도 없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4년차 회사원인 남편과 함께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왔지만 이젠 '서울시민'의 자격조차 잃을 처지에 놓였다.

순영씨는 '강남'(한강 남쪽)이지만 '강남'(강남구)이 아닌 구로동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모여사는 이 곳을 떠날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2005년 결혼할때도 남편을 설득해 구로4동의 13평 빌라에 전세집을 마련했다.



당시 전세금 3500만원에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을 털어넣었다. 내 집 마련의 희망은 월 10만원씩 넣는 주택청약저축에 걸었다.

남편의 연봉 2800만원을 아무리 쪼개봐도 월 20만원을 모으기 어려웠던 순영씨는 월 10만원씩 넣는 주택청약저축에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걸었다.



전세 들어간 지 얼마되지 않은 2005년말 윗집 주인이 5000만원에 팔겠다고 집을 내놨을때 대출을 받아 사볼까 고민했지만 이자 한 푼이라도 아끼자는 생각에 욕심을 접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집을 사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연봉 2800만원, 월 20만원 저축…고액과외는 꿈도 못꿔
통신사 고객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했던 순영씨는 아기가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수입은 남편의 연봉 2800만원이 전부이지만 돈 쓸 일이 늘어가니 남편 용돈은 월 20만원으로 몇년째 동결이다.

순영씨와 남편의 보험금 30만원, 교육비(어린이집) 30만원, 식비와 공과금 70만원 등 생활비를 제하고 월 20만원씩 적금을 붓는다. 남편은 금천구 독산동까지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직장동료에게 신세를 지고있다.


친구들에게 술 한 잔 사기도 부담스러운 남편의 지갑을 볼 때마다 순영씨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치솟는 휘발유값에 부담을 느끼는 직장동료의 차를 언제까지 얻어 탈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교육비 등 앞으로 지출할 비용까지 생각하면 허리띠를 졸라 맬 수밖에 없다.

순영씨는 학창시절 한 번도 고액 과외를 받아본 적 없고, 가을이면 두 돌이 되는 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자녀들에게 한달에 100만원씩 과외비를 지출하는 '중산층'이 순영씨에게는 멀게만 느껴진다.

◇5000만원으로 갈 곳 없어…서울 밖으로 밀려나는 이웃들
구로동은 순영씨에게 추억이 많은 곳이다. 동네 이웃들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하고 초등학교 친구들과 같이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하나 둘 떠나는 이웃들이 늘고 있다. 전세 살던 신혼부부들은 부천이나 인천으로 대부분 떠났다.

3년전 시세보다 싼 3500만원짜리 전세집을 얻었지만 요즘 시세는 두 배에 달한다. 작년에 펀드와 적금을 깨서 전세금을 1500만원 올려줬다. 며칠전 동네 부동산에 물어보니 전세 시세가 7000만원까지 뛰었다.

아무리 마음씨 좋은 집주인이지만 내년 봄 재계약 때는 적어도 1000만원 이상 올려줘야 할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기획부동산들이 동네에 들어오면서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고 고급승용차를 탄 외지인들의 방문이 잦아졌다.

집주인 아저씨는 1억5000만원에 팔아주겠다는 부동산의 제안이 솔깃한 모양이다. 주인이 바뀌면 전세금을 시세대로 올려줘야 할텐데, 벌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000만원짜리 적금을 깨더라도 이젠 서울에서 집 구하기는 어려울 모양이다.

강남 집값은 떨어진다는데 서민 동네는 '뉴타운' 바람이 불면서 전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옆집에 살던 초등학교 동창 한섭이는 올해 초 전세계약이 끝나자마자 부천으로 이사를 갔다. 다른 친구들도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서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재개발 바람에 동네에 정이 떨어졌다는 친구들의 푸념도 이젠 익숙하다. 집을 가진 친구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당장 팔아봤자 서울시 다른 곳으로 옮길 만큼은 안된다. "구로동이 올라봐야"라고 말하는 친구들과 "구로동도 이젠 너무 비싸다"는 친구들의 처지도 엇갈리고 있다.

◇"서울에도 서민들 살 곳 있었으면…"
순영씨는 얼마전 동네 친구와 함께 집에서 공방을 꾸몄다. 비누공예 강좌를 열고 직접 만든 제품을 인터넷에서 판매도 한다. 당장 내년에 올려줄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부업이지만 아직 벌이는 신통치 않다.

아이의 분리불안 증세가 호전돼 직장에 다시 다닐 생각도 하고 있다. 남편의 어깨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기 위해 순영씨는 오늘도 고민이 많다.

"경기를 살리는 것도 좋고 부동산시장을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데, 서울에도 서민들이 숨 쉬고 살만한 곳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가 오르고 전세금 오르면 서민들 고통은 더 크니까요. 고액 과외도 아니고 아파트에 살자는 것도 아니니까 전세금이나 어린이집 같은 교육비 부담만이라도 조금 덜어주면 좋겠네요"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