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거래세…조세정책에서 시장은 뒷전?

머니투데이 박성희 기자 2008.07.2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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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펀드 비과세 조기파기, 파생상품 과세안까지.."배려부족"

연일 해외펀드 비과세 조기 폐지에 이어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 방안까지 쏟아지면서 시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과거 재정경제부 산하에 있던 금융정책국이 금융위원회로 편입된뒤 공청회, 당정협의 등 조세정책결정 초기단계에서 부터 재정부 의견이 앞서가며 시장과 금융의 입장이 뒤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금정국을 이관받은 금융위원회가 조세정책 협의에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22일 기획재정부가 2009년 말까지 시행키로 했던 해외펀드 양도차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연내 조기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힌 데 이어 24일 조세연구원은 '소비과세제도 개선방안 정책토론회'를 통해 파생상품(선물, 옵션)에 대한 과세 방안을 발표했다.



파생상품에 대한 과세 방안은 '과세 선진화' 차원에서 예전부터 거론돼 왔다. 그러나 경제 현안 해결에 있어 난관에 봉착한 현 정부가 이를 돌파구로 삼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 "세수 확보 목적..시장에 대한 배려 부족"
이번 방안에 대해 업계는 시장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시장과 과세 사이에 균형을 잃고 세수를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됐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 국내 금융시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정부가 파생상품에 대해 거래세를 부과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며 "덩치가 커진 파생시장에서 세수를 확보하는 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2007년 국내 파생상품 거래규모는 6경6301조원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거래 단위는 27억7600만 계약으로 미국(60억9100만 계약)에 이어 세계 2위다.

23일 현재 코스피 선물 옵션 거래량은 28조9353억원에 이른다. 거래세가 0.3%만 부과되도 하루 9000억원의 세수를 확보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 "해외펀드 비과세 조기폐지..시장과 약속 저버린 것"

여기에 해외펀드 비과세 혜택을 조기 폐지하겠다는 방안까지 더해지면 조세정책에서의 시장 배려부족은 더 실감난다.



당초 계획과 달리 해외펀드 비과세 혜택을 일 년 앞당겨 폐지하겠다는 것은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외펀드 양도차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은 지난해 6월 해외투자 활성화와 환율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 밀어내기 차원에서 2009년 말까지 시행키로 하고 도입됐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바뀌어 환율 상승기조가 분명해지자 물가를 앞세워 정부는 이를 뒤엎었다.

일부에선 대내외적 경제 상황이 달라진 만큼 한시적인 정책을 충분히 조기 철폐할 수 있다고도 보지만 업계에선 시장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배신감'이 크다. 한 나라의 경제 정책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정부 입맛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외국계 A 운용사 관계자는 "이미 국제적으로 2009년까지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이를 조기 중단한다는 것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미 본사에선 2009년 말까지로 알고 한국 시장에 대한 마케팅 계획을 다 세워놨는데 당장 준비하고 있는 것도 접어야할 지 난감하다"며 "정책의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는데 또 언제 정책이 바뀔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B 운용사 관계자는 "처음 시행할 때는 2009년 이후로 연장하고 역외펀드까지도 범위를 넓힌다고 했었는데 어이가 없다"며 "한국 정부가 동북아 금융 허브를 꿈꾼다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해외펀드는 환율 관리용?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일각에선 정부가 해외펀드를 환율 상승의 '공공의 적'으로 치부해 환율 관리용으로 이용하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C 운용사 관계자는 "비과세 혜택을 도입할 때는 해외투자 저변 확대라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상 환율 관리 목적이 더 컸다"며 "해외펀드가 환율 상승에 주범으로 몰리는 게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해외펀드는 환헤지 여부를 선택하는 등 상품을 다양화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이렇게 되면 해외 진출을 위해 법인을 설립해 온 국내 운용사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은 정책 시행에 있어 정부의 일관성없는 태도로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라는 지적이다.

D 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금융시장 체력이 겨우 튼튼해졌는데 증시 약세 등 지금처럼 시장이 힘든 시점에서 철폐한다는 게 안타깝다"며 "전세계 어떤 나라도 한국보다 수익률이 좋은 국가는 있기 마련이고 해외증시를 통한 분산투자 욕구도 큰 데 이를 억지로 막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렇게 되면 국내에 따로 펀드를 설정할 필요없이 역외 펀드를 그대로 들여다 팔아야 할 것"이라며 "펀드 투자자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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