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민영의보 정책, '오락가락'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07.16 17:17
글자크기

몇달만에 활성화→규제 강화

정부의 민영의료보험 정책이 갈짓자 걸음을 걷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 금융위원회 등 민영의보 관련 부처는 민영의보 중 실손형상품에 대한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보장범위를 축소하는데 의견을 모으고, 축소 비율을 논의 중인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올해 3월 경제운용방향 발표 때 민영의보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정 반대 방향이다. 민영의보 산업 적극 지원에서 규제 강화로 180도 방향이 바뀌었다.



◇실손형 보장 한도 70~80%로 축소

정부는 현재 100%까지 가능한 본인부담금 보장 한도를 70~80%선으로 낮추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적자가 심화되는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높이자는 목적이다. 논의는 실손형 민영의보 상품 폐지까지 주장했던 복지부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실손형 보험의 본인부담금 보장 범위를 축소하면 가입자가 줄어들게 돼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본인부담금 보장 축소로 신규 가입을 사실상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겠다는 의미다.

복지부는 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된 전재희 의원이 부임하는 대로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서 민영의보 규제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복지부 안팎에서는 전 의원이 3선 의원인데다, 한나라당 최고위원까지 지낸 '실세'라는 점에서 실손형 상품 규제가 보다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갑자기 규제로 선회


정부의 민영의보 관련 정책 기조는 규제 강화가 아니었다. 기획재정부는 정부 출범 초 "민영의보 활성화로 의료산업을 선진화시키겠다"며 재정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추진단까지 꾸리겠다고 발표했었다.

이 과정에서 민영의보 상품에 기존 세제혜택과 더불어 추가로 세제 지원을 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통령직 인수위 때도 전 정권의 민영의보 규제 정책을 백지화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었다.

이 같은 정부의 민영의보 활성화 의지에 따라 실손형 상품 시장 진출을 꺼렸던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 생명보험사들도 속속 실손형 상품 출시에 나섰다.

하지만 5월부터 이어진 '쇠고기 파동' 과정에서 "정부가 부자만을 위해 건강보험을 민영화하려 한다"는 '괴담' 수준의 소문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논의를 전면 중단했다.

당시 재정부 고위 간부는 "정국이 안정되면 검토해 볼 수 있지만 민영의보 활성화가 건강보험 민영화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논의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었다.

그러다 논의 흐름 자체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와 영리병원 도입 연기 등과 맞물려 민영의보를 규제하는 쪽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 재정부 관계자는 "국민들에게 잘못 알려진 것일 뿐 논의 방향 자체를 정한 게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논란 재연 불가피

정부가 민영의보 규제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손해보험사들이 즉각 반발하는 등 논란도 격화되고 있다.

손해보험협회는 이날 반박자료를 내고 "정부가 민영의보의 보장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 스스로 선택한 보험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라며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질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각종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규제를 신설해 시장기능을 축소시키는 것은 규제완화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부가 실손형 상품 규제 강화의 근거로 들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론'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공식 확인돼 논란은 더 커지게 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개한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0~64세 인구 중 민영의보 가입자의 2년 평균 의료비용은 73만8000원으로, 비가입자 76만8000원보다 적었다. 다만 암 환자의 경우는 실손형 상품 가입자가 비가입자보다 의료비 지출이 많았다.

손해보험업계는 "민영의보가 건보 재정 악화와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만큼 정부는 민영의보 규제정책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란은 지난 2006년에도 있었다. 당시 유시민 복지부 장관 주도로 실손형 상품 출시를 금지하면서 보험사 감독권한도 복지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업계의 강한 반발과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됐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