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레터]펀드매니저도 단타하나요?

머니투데이 박성희 기자 2008.07.15 17:33
글자크기
"돈 맡긴 투자자들만큼이야 괴롭겠어요?"

두 달 가까이 증시가 내리막길을 달리면서 적잖이 스트레스 받았을 한 펀드매니저에게 안부를 묻자 이렇게 반문하더군요. 말이 그렇지 남의 돈 받아든 입장에서 나날이 손실만 늘어나니 아침마다 눈뜨기가 무서운 게 요즘 '그'들의 심경일 겁니다.

그는 "TV 프로그램 시청률을 확인하는 PD처럼 하루하루 수익률을 평가받는다"며 "매일 아침 책상 위에 올려진 자료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털어놨습니다.



장기투자를 외치는 운용사들이 일일 수익률에 일희일비한다니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일이지요. 물론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일 년이 되지만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아무리 유능한 매니저라 해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전략적으로 펀드를 운용하기 힘듭니다.

주가 움직임을 좇다보면 본래 의도와 달리 주식 편입 비중도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고, 그러다보니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놓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한 매니저는 "기업 가치가 양호해도 주가가 빠지면 눈물을 머금고 팔게 된다"고도 하더군요.



장기 성과를 중시하는 외국계 운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 운용사 마케팅 담당자는 "월간 수익률은 물론이고 주간 수익률까지 뽑아서 정리하고 있다"며 "국내 운용사가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고 비난할 게 아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다만 매일 수치를 확인하며 수익률 제고를 종용하는 국내사와는 달리 이 곳에선 마케팅 참고 자료로 쓸 뿐 매니저들에겐 데이터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감시하고 성과를 추적한다는 걸 알면 매니저가 충격받지 않겠느냐"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국내사와는 참으로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한 매니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익률에 울고 웃는 게 펀드매니저지만 사실 수익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장이 안 좋아도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기업이 있고 이를 찾아낼 힘만 있다면 남들이 어려울 때가 '기회'인 셈이지요."


국내 펀드에 들어간 돈이 366조원에 이릅니다. 이들 가운데는 '반짝' 고수익을 노린 돈도 있지만 운용업계 캠페인대로 3년 넘게 장기 투자를 계획한 돈도 적지 않습니다. 단기 수익에 연연해 운용전략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투자자를 기만하는 일이겠지요.

매일 요동치는 시장에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증시와 명승부를 펼치는 매니저들이 많아지길, 또 이런 매니저들을 키우는 운용사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