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채 발행 공시와 은행의 아전인수

더벨 황철 기자 2008.07.15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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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

이 기사는 07월09일(12:05)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은행채 발행 공시 제도가 오는 20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시중은행들은 앞으로 바뀐 증권거래법에 따라 채권 발행 신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번 발행 공시 제도는 투명성 확보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채권시장에서 급격히 증가한 은행채 비중을 감안할 때, 좀 더 일찍 시행했어야 한다는 ‘질타 반, 격려 반’의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관련법 개정 움직임 때부터 계속된 은행들의 아전인수식 행태 때문이다. 일부 은행들은 아직까지도 정부에 간헐적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동안 채권시장에서 누리던 '특수기관'으로서의 법적 지위가 어지간히도 아까운 모양이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신고서 제출이 면제된 산은채, 중금채, 농금채 등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특수채 지위를 박탈하려면 공평하게 모든 금융채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자 보호가 대의라면서, 은행채에만 투명성을 강요해서야 효과가 있겠느냐"고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국책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물귀신 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들의 주장은 애초부터 무리가 따른다. 이번 증권거래법 개정안은 주권상장법인, 코스닥 상장법인, 등록법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개별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법인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알다시피 산은채, 중금채, 농금채는 모두 별도의 특별법에 의해 통제된다. 이들에게 발행 공시를 요구하려면 특별법 개정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은행들의 주장대로면, 모든 법을 뜯어고쳐 채권발행기관의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


물론 투자자 보호라는 큰 뜻을 위해서는 번거롭더라도 필요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금융 공기업들은 매년 초 업무계획을 통해 자금조달부터 채권발행까지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는다. 또 주기적으로 외부감사, 금감원, 감사원의 검증을 거치고, 서슬 퍼런 국정감사까지 받아야 한다.

그런 이들에게 발행 공시까지 요구하는 것은 긍정적 효과보다 부작용만 키울 가능성이 있어 신중해야 한다. 더구나 민영화 과정(농협 제외)을 거치고 나면, 어차피 민간은행으로서 개정된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받긴 마찬가지다.



특히 과거 은행과 제2 금융권이 벌인 형평성 논쟁을 보면 은행의 이중적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동안 제2금융권에서는 금융채 발행시 자신들에게만 분담금 의무를 지우고, 공시를 유도한 것은 불합리하다며 민원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같은 법의 적용을 받는 은행들에게만 면책권을 준 것은 특혜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은행들은 자신들의 경우 공적 기관의 성격이 강해, 적시에 원활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공익과 직결된다고 주장해 왔다. 은행의 특수성을 감안해 불필요한 절차로 은행의 자금 순환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공익’을 앞세웠다.

이 같은 은행의 주장 역시 어느 정도 수긍할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현재 시중은행들이 진짜(?) 공공 기관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생떼를 보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금융기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자기합리화의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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