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그을린 '2008 서울관광'

머니투데이 원정호 기자, 박희진 기자 2008.07.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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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관광객 한밤 "방 바꿔달라"… 호텔업계 몸살

12일 저녁 7시 시청앞 광장 주변 A호텔 로비. 일본인 단체관광객 10여명이 비에 젖은 채 로비로 들어섰다.

여행가이드 김모씨는 "촛불 집회와 경찰의 원천봉쇄 여파로 호텔 앞에 관광버스를 정차하기 곤란했다"면서 "할 수 없이 100여m 떨어진 B호텔쪽에서 내려 걸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각자 여행용 가방을 끌고 오느라 빗속에서 우산을 제대로 못썼다"면서 "미안한 것은 둘째치고 빗길에 넘어져 다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가 '서울 관광' 해외 마케팅의 원년으로 삼은 올해 7월의 한 단면이다. 서울시는 올 관광객 유치 목표를 작년에 비해 10% 늘어난 700만명으로 잡고 마케팅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관광 마케팅 예산을 작년에 비해 무려 10배 늘린 400억원으로 책정하고 중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대대적 서울 홍보를 벌였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관광객을 비약적으로 늘린 싱가포르와 홍콩 등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중국 주요호텔 PDP전광판에는 '서울관광 광고'가 나오고 일본 도쿄 시내 중심가에는 '그랜드세일'과 '푸드페스티발' 등 서울 관광 이벤트를 래핑(Wrapping)한 버스가 운행됐다.

관광도시를 향한 서울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전례없는 홍보 마케팅 덕분인지 올 1~5월 중국과 대만 관광객은 작년에 비해 각각 29%, 24% 늘어났다. 이 기간 전체 관광객은 274만명을 기록,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3% 증가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관광객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례가 없었다"면서 "놀랄만한 성장에 고무돼 이대로라면 '2010년 1000만명 관광객 유치' 목표가 허황된 꿈은 아닐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들뜬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부 잠정 집계에 따르면 6월 관광객수는 지난해 6월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6월 이후 시청앞 광장 주변에 포진된 호텔에서 예약 취소 사태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집회 소리에 잠을 설친 투숙객들이 새벽에 방을 바꿔달라고 집단 항의하는 사태도 빚어졌다는 게 호텔업계의 설명이다.

A호텔 관계자는 "집회가 잦아들지 않고 점점 심해지자 투숙객들이 새벽에 로비로 몰려나와 환불 소동을 벌였다"면서 "방을 광장 반대편 방향으로 바꿔줬지만 손님들은 숙박예약일수를 채우지않고 다음날 체크아웃했다"고 전했다.

호텔업계에 따르면 관광객 중 일부는 촛불집회의 배경을 듣고 집회에 동참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관광객은 막연한 치안 불안을 호소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여행 가이드들이 저녁 7시 이후에는 관광객의 외출을 금지하도록 주의를 준다"면서 "볼거리가 대부분 도심에 있는데 제대로 관광을 못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호텔업계는 내국인 이용이 많은 식음료 사업도 직격탄을 맞았다고 하소연한다. 결혼식장 등 호텔 연회장을 예약한 고객들이 잦은 집회로 인해 예약을 취소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을지로 인근 B호텔과 C호텔의 경우 몇주동안 잡혀있던 결혼식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호텔업계는 이름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괜한 노출로 네티즌으로부터 공격받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고유가에 따른 여행비용 상승이 관광객 감소에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관광객이 느끼는 치안 불안 원인이 더 크다"며 "기대했던 중국 올림픽 관광특수가 물건너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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