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총맞아 죽었는데, 대화 제의했어야 했나"

머니투데이 송기용 기자 2008.07.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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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총격사망 알고도 국회서 남북대화 제의 논란

50대 여인 박 모씨(53)가 11일 금강산 관광 중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 곳곳에서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이 새벽녘에 경계가 삼엄한 출입제한 경계선을 1.2킬로미터 이상 넘어갔다는 것부터 시작해 시신 발견 장소가 경계선으로부터 200미터 떨어진 지점이어서 가슴과 대퇴부에 총을 맞고 1킬로미터를 이동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박 씨가 피격당한 새벽 5시쯤이면 동이 틀 무렵인데 총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고, 북측이 사망사실을 6시간이나 지난 오전 11시에 통보한 것도 미스테리다. 현재로서는 전적으로 북한의 주장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여러 의문이 속 시원히 풀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의혹과는 별개로 정부 당국 특히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의 처신에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 씨의 사망사실을 알고도 북한 측에 남북 당국간 대화를 제기한 대통령의 국회 연설이 부적절 하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20분 국회 본회의장에서 18대 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남북 당국의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과거 남북 간에 합의한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남포 조선소 건설 등 작년 10.4 정상선언 합의사안을 진보정권의 '대북 퍼주기'로 비난하면서 북측과 날카로운 대립각이 생겼던 것을 생각하면 대북정책의 획기적 전환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오후 3시6분.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이 대통령의 대화제의는 빛이 바래질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대통령이 박 씨의 피격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국회연설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현대아산 측에서 금강산에서 한국 관광객이 피격, 살해됐다는 사실을 오전 11시30분쯤 통일부에 알려왔고 이후 확인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연설을 위해 국회로 떠나기 전에 관련 사실이 보고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인지 시간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은 오후 1시30분쯤 피격 사망사실을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청와대는 금강산 관광객의 피격 사망사실을 확인하는데 2시간이나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한때 군에서 박 씨의 사망원인을 총격이 아닌 질병으로 보고하는 등 혼선이 있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지만 궁색한 변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에게 신속하게 직보가 이뤄졌다면 연설문 수정 등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는 그러나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안타깝지만 정부의 큰 정책방향을 밝히는 일을 (피격사건 때문에) 즉흥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대화 제의와 금강산 피격사건은 별개의 사안"이라며 총격 사망 사실을 뒤늦게 파악해 연설문을 수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 사건이 심각한 사안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고 정확한 진상도 파악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미 결정된 큰 틀의 대북정책 방향을 짧은 시간 안에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총격으로 국민이 희생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 재개를 제의한 것은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판단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어서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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