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도급' 인정판결, 불법파견노동자 구제길

머니투데이 류철호 기자 2008.07.11 17:31
글자크기

대법원 판결에 민주노총 환영 성명…유사 소송 줄이을듯

사내 하청 직원이라도 일을 맡긴 업체에서 실질적인 근로 관리를 맡아왔다면 해당 업체의 '정규직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은 기업들의 이른바 '위장도급' 관행에 제동을 걸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과 고등법원에 계류 중인 유사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부 대기업을 포함해 상당수 업계에선 인건비 절감과 해고 제한 등 노동법상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이른바 '위장도급'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

현재 고등법원과 대법원에는 현대중공업과 (주)SK, 한국마사회 등 유사 소송이 계류 중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사내 하청업체를 통한 간접 고용이라 해도 원청업체가 하청업체보다 근로자들과 더 긴밀한 고용 관계를 맺고 있다면 위장 도급이라고 판단한 것.

즉, 도급의 형식을 갖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임금지급 등 실질적인 지휘 감독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도급업체와 근로자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직접 고용에 해당된다고만 했을 뿐 위장도급이 파견법상 불법파견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현재 대법원에서 이번 소송과는 별도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위장도급이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에 해당돼 파견 후 2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고용승계가 이뤄진다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게 법원 주변의 판단이다.

파견법 6조 3항에는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해 계속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경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다음날부터 파견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돼 있다.

실제 그동안 2년 이상 회사에 근무하면 고용승계를 보장받는 파견노동자와는 달리 불법파견 노동자들은 계약만료 후 부당해고를 당하더라도 구제받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와 관련, 노동계에서는 이른바 파견법 6조가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부당해고를 양산하는 '악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또 노동계는 대기업 사이에 만연된 간접고용 실태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으나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노동계 일각에서는 차라리 파견 근로 제한이 없는 미국과 영국 등 일부 선진국처럼 파견 업무를 확대해 불법 파견 문제를 완화하는 등 고용 탄력성을 높이자는 주장도 제기돼 온 상황이다.

하지만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의 불법성에 대한 판단은 없었지만 사내 도급을 통한 간접 고용 근로자를 정식 직원으로 인정하라고 판단한 이번 대법원의 첫 판단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다.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통해 "근로자 권리의 사각지대였던 간접 고용 근로자들의 노동권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불법, 위법적 비정규직 고용에 법원이 경종을 울렸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또 "이번 판결이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대기업의 횡포를 막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충정 김진환 대표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법원이 노동권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을 인정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반면 노동부는 이번 판결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 2003년부터 3년간 자동차와 조선, 철강, 전기, 전자, 기계, 금속 등 거의 모든 업종을 대상으로 불법하도급에 대한 일제점검을 벌였고 지금은 대부분 정비가 됐기 때문에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는 하도급 사업장이 별로 없다는 것.

노동부는 특히 위장하도급 근로자가 원청업체에 직접고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경기화학이나 SK㈜의 경우도 도급업체 지분의 100%를 원청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의 계열회사였다는 점에서 용인기업과는 약간 다르지만 근본 취지는 대동소이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생산현장 특성상 원청업체가 업무를 전적으로 사내하도급 업체에 맡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측면이 있어 원청업체의 '개입'이 어느 정도여야 직접고용으로 인정할 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사안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