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건희 회장의 공판을 지켜보며](https://thumb.mt.co.kr/06/2008/07/2008071018155227939_1.jpg/dims/optimize/)
만난 적도 없다. 이야기를 나눈 적은 더더욱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척을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공인일 확률이 매우 높다. 삼성 이건희 전 회장도 분명 공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취임했던 1987년 당시 매출을 20년 만에 11.4배로 늘렸고, 수출은 무려 85배로 성장시켰다. 같은 시기에 임직원 수는 1.6배 늘어난 반면 시가총액은 150배가 넘게 커졌다. 자체기술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한국의 최초 기업이라는 명성도 재임 중의 치적으로 남는다.
앞을 내다보는 투자였음을 시간이 지나 확인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주변 임원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여 전 세계에 한국기술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기술력에 자신감을 가질 무렵 디자인이 최후의 승부수라 확신하고 디자인 혁명을 주도하여 성장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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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국내는 물론 해외의 여러 조사를 통해 존경받는 기업인으로도 여러 차례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숫자로 나타나는 조사 결과가 아닌 진정으로 국민들 가슴에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오랫동안 깊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음 일화를 소개한다.
1946년 늦은 봄 출근을 위해 회사버스를 기다리던 사장은 늦게 도착한 버스 때문에 지각을 하고 말았다. 원인은 사고가 아닌 운전자의 부주의였다. 사장은 그 운전자는 물론 그의 상사들 중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는 8명에게 감봉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가장 책임이 무거운 본인의 한 달 월급을 회사에 반납했다. 1989년 9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마츠시타 전기의 창업자 마츠시타 고노스케의 일화다. 마츠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에서 최고의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솔선수범해서 준수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 회장 역시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모든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한바 있다. 한국에서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인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