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건희 회장의 공판을 지켜보며

오태헌 경희사이버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2008.07.1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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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특검팀이 지난 10일 결심공판에서 이건희 전 회장에게 징역 7년에 벌금 3500억 원을 구형했고 16일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다.

[기고]이건희 회장의 공판을 지켜보며


판사에게 요구한 구형의 주된 이유는 어떤 조직이든 불법은 용납될 수 없으며 사적이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활동한 것은 무겁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룹의 통합적 관리는 사실상 구조조정본부가 유지, 관리했으며 국내 최고의 기업인으로 국내 경영에 기여한 점, 포탈세액의 상당부분을 납부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더 엄히 다루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여러 사안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구형의 경중을 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섣불리 그렇게 해서 공정하고 평등하게 내려져야 할 판단을 그르쳐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만난 적도 없다. 이야기를 나눈 적은 더더욱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척을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공인일 확률이 매우 높다. 삼성 이건희 전 회장도 분명 공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 공인에 대해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을 확인해 보자. 먼저 선도적 개혁으로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라는 점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식상해질 정도로 널리 알려진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며 임직원의 자기 혁신을 주문했다.

취임했던 1987년 당시 매출을 20년 만에 11.4배로 늘렸고, 수출은 무려 85배로 성장시켰다. 같은 시기에 임직원 수는 1.6배 늘어난 반면 시가총액은 150배가 넘게 커졌다. 자체기술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한국의 최초 기업이라는 명성도 재임 중의 치적으로 남는다.

앞을 내다보는 투자였음을 시간이 지나 확인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주변 임원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여 전 세계에 한국기술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기술력에 자신감을 가질 무렵 디자인이 최후의 승부수라 확신하고 디자인 혁명을 주도하여 성장을 이어갔다.


또한 국내는 물론 해외의 여러 조사를 통해 존경받는 기업인으로도 여러 차례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숫자로 나타나는 조사 결과가 아닌 진정으로 국민들 가슴에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오랫동안 깊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음 일화를 소개한다.

1946년 늦은 봄 출근을 위해 회사버스를 기다리던 사장은 늦게 도착한 버스 때문에 지각을 하고 말았다. 원인은 사고가 아닌 운전자의 부주의였다. 사장은 그 운전자는 물론 그의 상사들 중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는 8명에게 감봉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가장 책임이 무거운 본인의 한 달 월급을 회사에 반납했다. 1989년 9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마츠시타 전기의 창업자 마츠시타 고노스케의 일화다. 마츠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에서 최고의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솔선수범해서 준수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 회장 역시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모든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한바 있다. 한국에서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인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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