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기후협상,그래도 빨리 참가해야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08.07.0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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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지구환경연구소 "국제기후대응,에너지절약으로 극복할 수준 아니다"

우리 기업과 정부가 국제 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동향에 너무 무디게 반응하고 있다는 반성과 비판이 제기됐다.

박찬우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은 7일 국제 온실가스 감축규제가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지금의 사회·경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에너지 절약 정도로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인류가 화석연료로부터 누려온 대부분의 서비스를 새로운 기술·경제시스템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탄소배출권 유료시대의 도전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0% 줄인다'는 데 국제사회가 공감대를 이루고 있지만, 이는 선진국이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더라도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 예상치(BAU배출량)의 60%를 줄여야만 가능하다고 풀이했다.



◇기후규제 탓 '1인당 매년 최대 57만원 부담' 전망= 박 연구원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2012년 이후 산업계가 저탄소 경제로 이행하도록 하는 데 매년 600억유로(98조원)를 투입할 방침이다.

박 연구원은, 산업계 이외의 공공·민간부문에도 별도로 매년 730억유로(119조원)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 비용이 세금이나 제품가격에 전가될 경우, 1인당 350유로(57만원)씩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은 2020년까지 총 52조엔(505조원)의 대응 비용이 들고, 미국도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향후 40년간 10조달러(1경420조원)가 들 것으로 예측했다.

박 연구원은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드는) 비용지출을 피할 수 없겠지만 문제는 '그 지출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라며 "탄소배출권을 화폐와 같이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저탄소 기술을 갖춘 국가가 최대 수혜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향후 기후 규제가 강화될 가까운 미래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 바꾼다는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원은 제너럴일렉트릭(GE)이 저탄소 경제체제로 이행하기 위해 자사의 모태이자 '인재사관학교' 역할을 해 온 가전·화학 부문을 매각했음을 예로 들며,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끊임없는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불공정 기후협상, 그래도 조속히 참가해야= 박 연구원은 "선진국들이 2012년 이후 (각국에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규정하는) 체제를 정비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누가 다음 룰을 만드느냐에 따라 '세계경제 주도권'의 향방이 갈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의 기후협상 체제가 불공정한 규칙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를 벗어날 길이 없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국제 사회에서 주류를 차지한 이들이 EU인데, 이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기후협상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라는 것.

박 연구원은 "유럽 사회에 온난화에 대한 위기 의식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EU가 환경을 보다 사랑해서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EU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0%, 2050년까지 50%' 줄이자고 과감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최근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회원국으로 가입된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년간 산업기반이 붕괴된 동구권 국가들이 EU에 가입해 회원국 수가 15개에서 27개로 늘어났지만, 온실가스 배출량 평균이 이미 크게 떨어져 있다는 설명이다.

박 연구원은 "EU 전체 회원국을 기준으로 보면 이미 EU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대비 11% 감축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기후체제는 유럽의 금융자본과 정치가, 산업계가 '세계 경제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합작해서 만든 작품"이라며 "유럽을 국제배출권 거래 중심으로 만든다는 EU의 장기구상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박 연구원은 우리나라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산업화를 정착시킨 덕에 에너지 효율이 이미 높은 점을 우려했다. 같은 감축효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기술혁신이 필요하고, 그만큼 비용이 더욱 많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저탄소 기술과 금융시스템으로 무장한 선진국이 우리나라에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라고 요구하는 형국은 과거 열강 무역선이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던 때와 흡사하다"며 "정보기술(IT) 등 우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상대로 온난화 비즈니스 펼쳐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정부와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도 없고 기후변화 대응 로드맵도 매우 부실한 상황"이라며 "강력한 동기(드라이브)가 없는 상태에서 (새 기후체제가 시행될 2013년까지) 5년을 그냥 보내면 영원한 2군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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