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자도로'를 죽였다

더벨 안영훈 2008.07.08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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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

이 기사는 07월07일(10:24)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지난 10년간 투자 시장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아 온 민자도로 프로젝트 파이낸스(PF) 사업의 위상이 최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과거 민자도로 PF 사업은 국내 SOC 대표이었지만 이제는 생태계 파괴의 한 요인이자 ‘혈세 먹는 하마’라는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민자도로 PF사업 담당자들에 대한 평가도 이전과 큰 차이가 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민자도로 PF사업의 산실로 불린 산업은행 PF실은 누구나 탐내는 자리였다. 회사를 옮기더라도 단순 이직이 아닌 '모셔가기' 수준이었고, 실제로 증권사 임원 등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된 업무를 처리하는 '특수직'으로 평가 절하된 상태.

투자분위기도 달라졌다. 종전에는 투자를 위해 줄을 섰지만 이제는 애원을 해야 다만 몇 푼이라도 투자하는 식이다.

불과 몇 년 만에 모든 것이 변한 셈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민자도로 PF사업의 위상추락은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고속도로 1km당 소요되는 건설비는 약 200억~250억원 정도로, 외환위기 이전의 모든 도로는 국민의 세금으로 건설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재정부족으로 정부가 민간자금을 유치해 고속도로의 건설비를 충당했다. 자금 상환은 고속도로 운영수익으로 충당하기로 약정했다.

이 같은 건설 방법은 미래의 운영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유치하기 때문에 사업시행을 위해선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의 통행량 예측이 필요하다. 여기에 향후 경제전망까지 반영하다보니 사업성분석 작업에만 2년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는 이처럼 철저히 계산된 사업이 ‘도로는 공공시설’이라는 명분하에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신규고속도로의 설립으로 인한 경제성을 따지기 보다는 통행료가 재정도로(정부가 건설하는 도로)보다 높다고 아우성친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보단 민간투자자들을 압박해 통행료를 내리게 한다. 운영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선심 행정도 문제다. 민자도로가 옆에 있는데도 주민편리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대안도로(국도)를 만든다. 유럽에서는 민자고속도로의 예측 통행량 변화를 막기 위해 반경 수십 킬로미터 안에는 대체도로 설립을 금지하기도 하는데 국내에선 오히려 정부가 나서 예측 통행량에 변화를 일으키는 셈이다.

당연히 대안도로의 등장은 민자도로의 통행량 감소를 불러 오지만 정부는 그 책임을 통행량 조사기관의 잘못으로 전가시켜 버린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초창기 국내 민자도로 통행량 조사를 맡은 미국의 한 조사기관은 국내시장에서 영구철수를 선언하고 자국으로 돌아갔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운영 적자를 보전해주던 정부가 혈세낭비란 지적에 적자보전정책을 중단한 것이다.

코너에 몰려버린 금융회사들은 더 이상 민자고속도로에 투자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결곡 민자도로 사업은 사장위기에 직면했다.

혹자는 민자도로 대신 다시 재정도로로 돌아서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민자도로를 사장위기로 내몬 문제점들을 인식하지 않는 이상 재정도로 역시 물밑에서 세금낭비의 원천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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