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금조달 정보는 '일급비밀'

머니투데이 이승우 기자 2008.07.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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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해외채 발행 국내공시 안해..국내 투자자 정보 차단

이 기사는 7월4일(08:46)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작년 8월, LCD를 생산하는 한 코스닥 업체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해외에서 발행, 외화조달에 성공했다. 규모는 4500만달러(원화 환산 약 420억원)로 해외 투자자들에게 사모 형태로 조달했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던 이 업체는 해외 차입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오히려 런던은행간금리(Libor)에 800bp를 얹어 준 차입금리가 너무 높다는 지적을 받으며 한동안 홍역을 치루어야 했다. 당시는 서브프라임 사태 충격으로 국제 금융시장이 어려울 때였다.

지금은 상황이 더욱 나빠졌지만 당시만 해도 시장금리 수준이 낮았던데다 기업들이 해외차입에 나서면 국내 조달에 비해 금리를 상당폭 낮출 수 있었다. 코스닥업체이기는 했지만 꽤 알려진 업체인데다 일반 사채보다 상당히 저리에 발행되는게 보통인 BW를 국내보다 훨씬 높은 금리로 발행한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이 기업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투자자들이 이 기업의 주식을 무지막지하게 팔아 버린 것이다. 이후 여러 언론의 추가 취재 결과 자금 사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고 결국엔 부도가 났다.

잠깐 여기서 짚어볼 게 있다. 이 기업의 해외 조달 금리가 알려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니 조달 금리를 아예 투자자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면..

CB(전환사채)와 BW 등 주식 연계 채권의 경우에는 국내에 조달 조건과 투자자 등 관련 사항이 공시된다. 그래서 국내 투자자들도 해외 조달 정보를 알 수 있다. 물론 그 중요성에 대해 투자자들이 인지를 하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기업의 재무 정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해외 조달 조건이 주식과 연계돼 있지 않은 방식이라면 공개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가 이 같은 경우다.

금감원의 규정에 따르면, 금융회사를 포함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공모로 채권을 발행할 경우 국내에서는 공시 의무가 면제돼 있다. 발행 지역이 해외인데 국내시장에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발행 분담금 의무를 지우게 되면 이중부담의 소지가 생기는데 이를 경감한다는 차원이다.

물론 일리가 있다. 1차적인 투자자가 해외 투자자인데다 국내 금감원 공시를 위해서는 유가증권신고서를 내야하고 또 발행분담금을 내야하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보고서나 분기보고서를 통해 사후에 해외 조달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알리게 한 것이라고 금감원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재무 정보 전달의 시의성과 정확성에 대해 충분치 않을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금융당국의 이야기처럼 해외 조달과 관련된 정보가 분기 혹은 감사보고서 주석 사항의 외화 채무 항목에 기재되지만 한참 지난 시점에 나타나는 것이고 또 규모 정도만 간단히 기재돼 있다. 조달 금리는 나오지도 않는다.

기업의 해외 조달 금리가 재무 상태에 대한 전체적인 정보를 주지는 않더라도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위에 언급한 기업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높은 조달금리가 결국에는 부도로 가게 된 이 회사의 운명에 대한 시그널이었던 셈이다. 한참이나 지난 시점에 투자자들이 관련 정보를 알게 됐다면 이미 때는 늦을 수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주가가 폭락하고 거대 금융회사가 쓰러지는 등 전세계 금융시장이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충격이 아주 큰 사건이 발단이 돼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징후는 미국에서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사람들의 연체율이 상승한 것 정도에서 감지됐다.

연체율 상승이 대출을 담보로 만들어진 파생상품의 수익성을 떨어뜨렸고 레버리지를 일으켜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금융회사들의 손실이 확대, 전세계에 투자했던 자금을 대거 회수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미국 뿐 아니라 유렵, 중국 등 전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체율 상승이라는 작은 시그널로 향후 사태를 감지한 JP모간은 베어스턴스를 인수할 정도의 여력을 비축할만큼 충격에 대비했다. 그렇지 못한 금융회사들은 휘청거리거나 몰락하고 있는 모습을 지금도 보고 있다.

기업들이 낮은 금리로 해외 조달에 성공하게 되면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만 조달 조건이 나쁠 경우 이를 절대 밝히지 않으려 하고 있다. 해외 조달 정보가 마치 '일급비밀'인 양..

좋든 나쁘든 아주 작은 정보가 투자자들에게 혹은 전체 금융시장에 중요한 시그널이 될 수 있다. 제공된 정보를 두고 중요한 의미로 해석하든 혹은 그냥 지나치든 판단하는 것은 그 다음, 투자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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