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방출"은 시대요구? 달콤한 독배?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7.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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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한은 "외환보유액 충분, 강력 대응"

- 보유액 2581억달러 세계 6위
- 정부·한은 그동안 엇박자 깨고 '공동 대응'
- 투기자본 역효과·환율조작국 지정 등 우려


"요즘은 한국은행보다 우리가 더 물가를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기획재정부 외환당국자의 말이다.



물가안정을 최대 목표로 삼는 중앙은행보다 정부가 물가를 더 우려한다는 것도 낯설지만 외환당국자가 물가를 신경쓰는 것 역시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다.

지난 3월까지도 "외환당국이 언제 물가보고 환율을 운용하더냐"던 재정부가 어느새 "물가안정을 위해 외환보유액을 풀어서라도 환율을 안정시키겠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재정부와 한은이 7일 공동발표한 '최근의 외환시장 동향에 대한 견해'도 재정부가 주도해 마련한 것이다. 물가안정을 위해 환율 급등을 강력 차단하겠다는 게 골자다.

◆"외환보유액 충분하다"= 최종구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며 "환율 안정을 위해서는 외환보유액의 매각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부인 외환보유액를 정부가 언제까지 축낼 수 있겠느냐"는 시장 일각의 의구심을 일축하려는 의도다.


지난달 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2581억달러로 세계에서 6번째로 많았다. 지난달 약 50억∼60억달러로 추정되는 달러화 매도 개입을 단행했음에도 외환보유액은 1억달러 밖에 줄지 않았다. 유로화 강세로 유가증권의 달러 환산액이 불어나고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도 늘어난 덕분이다.

정부 뿐 아니라 한은이 환율 안정에 공동 대응한다는 것 역시 이날 당국이 강조하려고 한 바다.

아울러 정부는 단순히 외환보유액의 달러화를 내다파는 방안 외에 수입업체의 외화 결제대금 마련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경우 외환시장에서 수입결제 대금을 마련하기 위한 달러 매수 수요가 줄어들어 환율 상승 압력도 낮아질 것이라는게 재정부의 판단이다.

구체적으로는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해외에서 달러화를 빌려와 수입업체들에 결제대금으로 빌려주도록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시대의 요구? 달콤한 유혹?= 환율 안정을 위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면서도 재정부는 고민이 적지 않다.

새 정부 출범초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고환율을 부추겨온 재정부가 최근 들어 '물가안정'을 목표로 저환율을 표방하고 나선 데에는 물가급등을 성토하는 여론의 입김이 컸다.

실제로 지난 5월 수입물가 상승률이 44.6%로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3월 이후 10여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데에는 환율상승의 탓이 컸다. 원화 기준 수입물가 상승률이 45%에 육박하지만 달러화 기준 상승률은 28%에 불과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게다가 이 같은 물가상승세가 전세계적인 장기추세로 굳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재정부의 환율 기조를 돌려세웠다.

그러나 정부가 '단기적인 물가안정'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내릴 경우 외환위기 때처럼 투기세력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경상수지 적자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장화탁 동부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오르게 놔두면 물가상승 압력은 높아지겠지만 무역수지 개선은 기대할 수 있다"며 "무역수지가 개선되면 환율도 자연스레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누를 경우 국제금융시장에서 '원화강세'에 대한 믿음이 퍼져 자본유입을 촉진시키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오히려 물가상승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자국의 통화강세(달러화 대비 환율하락)를 유도하는 각국의 정책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주범인 유가급등을 안정시키기 위한 달러화 강세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계 대형 투자은행(IB) 모간스탠리의 스티븐 젠 통화담당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물가안정을 위해 자국통화의 약세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효과적이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태국, 필리핀, 대만 등이 자국통화 강세를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시장 개입이 환율을 특정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질 경우 미국으로부터 '환율 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미 재무부는 6개월에 한번 '환율 보고서'를 작성해 의회에 제출한다. 여기서 '환율 조작국'으로 분류되면 관세상 불이익 등 무역보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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