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전략] 유가의 포로

머니투데이 홍재문 기자 2008.07.0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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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 순매도에 국내 경기침체 공포까지 합세

유럽과 미증시가 상승했다고 해서 코스피지수가 같이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는 고유가 행진이 멈추지 않고서는 국내 경기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가 외국인 주식순매도 행진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 시작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1500대로 주저앉았다. 전날 1600선 회복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면서 연저점(1537) 붕괴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주가순익배율(PER)이 10배 이하로 떨어지는 등 밸류에이션이 매력적이라거나 2분기 기업어닝이 3분기 연속 호전되고 있다는 낙관론은 설 땅을 잃었다.
1600선 밑을 과매도 국면으로 진단하는 것조차 증시를 위로만 보고 싶어하는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외국인은 이날도 2651억원을 순매도하며 20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다. 이제 하루만 더 순매도에 나서면 사상최장기간(21일) 연속 순매도 행진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6조원에 육박하는 누적 순매도 행진이 언제 그칠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외국인의 매물을 받아내며 매수 총공세를 펼치던 투신권(자산운용사)은 의외로 꼬리를 내렸다. 투신은 이날 295억원을 순매도하며 10일만에 순매도로 돌아섰다.
프로그램 매수차익잔고가 7조2610억원에 이르며 사상최대치(7조4115억원)에 근접한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이었다.

이는 그동안 외인 매물을 받아내며 그나마 수급 안정판으로 부상했던 프로그램 매수분이 독약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외인 매도공세에 프로그램 매물까지 가세되면 주가가 하루에 100포인트씩 빠지지 말란 법도 없다.

5일만에 561억원 순매수로 돌아선 개인마저 저가 인식을 포기하고 매도를 재개한다면 과연 어떤 매매주체가 지수를 받칠 수 있을 것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외국인-투신-개인'의 3대 매매주체가 모두 일방향의 매매동향을 보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연기금 혼자 남는다. 하지만 하루 수백억원에서 기껏 1000억원대 순매수에 불과한 연기금이 증시를 받칠 힘은 없다.
외환보유액을 털어서 정부가 직접 주가 방어에 나서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얘기다.

고객예탁금이 지난 3일 3000억원 증가하며 9조8000억원으로 늘어났지만 개인의 신용융자 잔액이 3조8000억원에 달한다.
주가가 무너지면 신용거래분이 먼저 투매현상을 보일 수 있다. 예탁금 증가보다 신용융자 잔액 감소가 더 두려운 상황이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멈추고 하락세로 완벽하게 전환되기 전에는 어떠한 기대감도 접어야 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힘을 얻고 있다.
유가에 100% 연동된 증시 상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섣부른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현실적 포기론'이 '막연한 낙관론'보다 이성적이다. 저가인식하에 주식을 샀다가 돈을 더 잃는 우를 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증시 붕괴보다 더 큰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바로 부동산 시장이다. 개인 자산비중의 절대치를 차지하는 부동산을 방어하고자 손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주식을 팔고 펀드를 깨 그나마 현금을 확보하려는 조짐마저 일고 있다는 지적이다.

류용석 현대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와 주가가 정확하게 반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유가가 떨어지기 전에는 어떠한 논리도 의미 없다"고 단정하면서 "유가가 또 한번 급등하면 주가 낙폭이 상상밖으로 커질지 모르는데 더 무서운 건 부동산 가격 하락"이라고 우려했다.

PER가 낮고 기업어닝이 좋게 유지된다면 주가가 떠야 하는 게 맞는 이론이다. 그러나 현재 현실에서 이런 이론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은 시장악재가 워낙 거대하기 때문이다.

30억∼40억달러를 퍼부어 1035원으로 급락시켰던 원/달러 환율이 하루만에 1050.4원으로 치솟으며 2년8개월 종가 최고치를 기록한데서 시장의 파워가 어떤지 절감할 수 있다.

1060원선을 넘게 되면 100억달러를 쏟아 부어도 환율 상승압력을 제어하지 못할 지 모른다. IMF때 경험한 바이기 때문에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미국이 진정 고유가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아마도 유가 고공행진이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이머징마켓을 초토화시킬 지 모른다.
현재 인플레 압력에서 가장 부담이 덜한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에 고유가 지속에 따른 인플레 충격은 상대적으로 증시 낙폭이 크지 않고 부동산 시장이 망가지지 않은 한국 같은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그래서 외국인이 코스피 증시를 외면하고 주가는 지지선을 찾지 못할 정도로 추락하는 모양이다.

이젠 미국이 휴장이라고 해서 안심할 단계도 아니다. 미증시 추가 하락 없이도 코스피지수가 계속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이 열리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만이 우군인 비참한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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