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前회장 "1위 정말 어렵다" 울먹

머니투데이 정영일 기자 2008.07.02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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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가 세계1위, 20년 갖고도 안될 것"

이건희前회장 "1위 정말 어렵다" 울먹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은 삼성특검 관련 6차 공판 도중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제품 가운데 11개가 세계 1위인데 1위는 정말 어렵다"고 말하며 복받친 감정을 참지 못해 목이 메여 울먹였다. 이 전 회장은 "이런 회사 만드는데 10년, 20년 갖고도 안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이날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한 법정에 섰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 이 전 회장 증언 도중 울먹이기도=재판부는 이날 양측 신문이 끝난 후 "모든 계열사에 다 애착이 가겠지만 특별히 중요한 회사는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고 이 전 회장은 "삼성전자 (81,800원 0.00%)와 삼성생명이 가장 중요하다. 삼성증권 (40,200원 ▲700 +1.77%)은 미래에 가장 중요한 회사"라고 답했다.

재판부가 다시 "삼성전자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자 이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의 감정이 격해졌다.



이 전 회장은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제품 중 11개가 세계 1위다. 1위는 정말 어렵다. 아마 그런 회사를 만들라고 한다며 10년, 20년 가지고도 안될 것"이라고 대답하며 울먹였다.

재판부가 시간을 주며 천천히 대답하라고 하자, 이 전 회장은 물을 한 컵 마시고 진술을 이어갔다.

재판부가 "특정 계열사에 손해가 되는 의사결정을 했을 때 소수 주주의 피해에 대해 생각해봤느냐"고 묻자 이 전 회장은 "해봤다. 어떤 방법이든 보상하고 이쪽은 이쪽대로 추진시키는 걸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 전 회장은 또 "스스로 최대주주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완전히 경영자라고 생각한다. 지배주주라고는 생각도 안했다"고 답했다. 이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최악의 경우에는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경영권 안정을 위해) 지분을 어떻게 가져가는 것보다 연구개발을 열심히 해 1등 제품을 많이 몇 개 더 내고 열심히 경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누구라도 아들에게 자신이 이룬 성과를 물려주고 바라는 부분이 있다"는 재판부의 질문에는 "(그런 생각을) 해봤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어 "자금 여력도 있어야 하고 이재용 본인이 능력이 닿아야 한다. 그 능력이 후계자로 적당하지 않으면 절대 예우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자금 여력'이 어떤 의미인지 묻자 이 전 회장은 "돈을 만들던지 또 417호실에 앉아 있는 이유가 차명계좌인데, 이런 것이 없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증여세 납부 액수가 일반국민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낮다"고 말하자 이 전 회장은 "맞다"며 동감을 나타냈다. 이 전 회장은 "(그 같은 내용을) 보고 받아 알고 있고 인정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구조본이 계획적으로 개입해 이재용 전무의 재산을 증식했다는 재판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이 전 회장은 "증여할 때 타인이 조금만 투자해줘도 주식이 많이, 빨리 올랐다. 그런 부분은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 '아버지와 아들' 한 법정에= 이 회장보다 15분정도 앞선 오후 1시께 법원으로 나온 이 전무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짧게 대답하고 법정으로 향했다.

뒤이어 법원으로 나온 이 회장은 "아들과 함께 법정에 서게 됐는데 심경이 어떤가"라는 질문에 "좋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또 "아들에게는 도의적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없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용 전무에 대한 증인 신문에 앞서 변호인단은 이건희 전 회장이 퇴정한 상태에서 증인 신문을 진행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정작 이 전 회장은 이재용 전무의 증언을 "듣겠다"고 했다.

계속되는 건강 이상설에도 이 전 회장은 장남인 이 전무에 대한 증인 신문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아들의 증언을 빠뜨리지 않으려는 듯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전무는 지난 1994년부터 자신 명의로 진행된 주식 매입과 매도 과정에 대해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관심을 가질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당시는 박사과정 중으로 학교공부를 따라가는데도 정신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재판부가 "법대 교수들이 고발한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냐"고 묻자 "기존에 제기되던 것들과 조금 달라 좀 더 신경을 썼었다"며 "당시 비서실에 문제가 없는 것이냐고 물어봤지만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 삼성저격수 vs 이건희 회장=그동안 '삼성공화국' 논쟁을 주도해온 김상조 한성대 교수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 등이 양형증인으로 이 회장과 한 법정에 선 것도 이목을 끌었다.

김상조 교수는 "기업 활동의 재량권은 폭넓게 인정해야 하지만 개별 거래 당사자의 독립적 지위와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의사교환, 일탈행위에 대한 제재, 피해구제 가능성 등에 따라 다르게 평가해야한다"며 "지금 우리 현실은 재량권을 좁혀야 거래비용이 줄어드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에서 에버랜드 CB나 삼성SDS BW 발행은 근본적으로 기업 활동인 만큼 폭넓게 재량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박한 것이다.

김 교수는 "그룹 비서실도 기업집단의 컨트롤 타워로 놀라운 성과를 낸 것이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이건희 전 회장의 사적 이익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활동을 한 것도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에서는 김 교수가 2000년대 초반에는 에버랜드 CB 발행으로 발생하는 피해가 회사 피해가 아니라 주주가 손해를 입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만큼 주장이 일관성이 없다고 공격했다.

이 전 회장은 김 교수와 곽 교수의 증언을 유심히 들었다. 두 교수가 이 전 회장을 공격하는 발언을 해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공판 후 법원을 떠나면서 기자들이 "두 교수가 재판부에 엄한 처벌을 요구했다"는 질문에 대해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현장에 있던 삼성 측 변호사는 두 교수가 대표성이 있는 증인들도 아니고 단순히 주관적인 평가를 말한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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