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전략] 고유가 인정론

머니투데이 홍재문 기자 2008.06.30 17:01
글자크기

외인선물·프로그램 순매도 재개시 수급붕괴 우려

애초부터 장이 뜨길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디커플링이 가능한 상황도 아닌데 지난 이틀간 4% 가까이 하락한 다우지수를 무시하고 코스피가 상승하는 것은 이변이었다.
결국 일본 닛케이와 대만 가권지수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코스피도 0.57% 떨어졌다.

하지만 코스피지수의 이틀간 낙폭이 -2.54%에 불과하다. 미증시에 비해 선방한 셈인데 문제는 내용이 좋지 않다.



이날 프로그램 순매수가 5637억원에 달했다. 외국인이 16일 연속 주식순매도 행진을 펼치는 가운데 프로그램으로라도 증시를 받칠 수 있으면 다행인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프로그램은 외상거래와 같기 때문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짐을 부인할 길이 없다.

매수차익잔고가 6조5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쿼드러플위칭데이 이후 증가한 1조원은 베이시스 악화시 언제라도 매물화될 수 있다.
외국인이 사흘 연속 지수선물을 순매수하면서 장중 베이시스가 2.0을 넘는 고공행진을 펼침에 따라 프로그램 순매수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반기말 윈도드레싱마저 끝난 상황에서 언제까지 프로그램 순매수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6월 한달간 증권은 이틀을 제외하고 순매수에 나서며 총 1조83억원을 순매수했다. 기타법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순매수를 지속하며 9531억원을 순매수했다.
전날까지 2조1000억원대 누적 순매수를 기록했던 개인은 이날 월중 최대규모인 2828억원을 순매도했다. 가장 많이 매수하던 개인이 손절을 시작하는 것이라면 매수의 한 축이 무너짐을 의미한다.

만일 외국인이 선물 순매도로 돌아서면서 베이시스가 악화돼 프로그램이 순매도로 돌아선다면 과연 어떤 매매주체가 장을 받칠 수 있을 지 상상을 불허한다.

삼성전자 (63,000원 ▼100 -0.16%)가 이틀간 6% 넘게 급락하며 120일 이평선 밑으로 떨어졌다. 60만원 밑을 매수기회로 여기는 분위기지만 막상 60만원선이 붕괴되면 상승추세 종료라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현대차 (250,500원 ▲4,500 +1.83%)두산중공업 (17,960원 ▼750 -4.01%)은 360일 이평선 밑으로 떨어졌다. 과연 어떤 재료가 등장해야 주가가 뜰 수 있을 것인지 막연한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은 1046.0원으로 상승했다. 외환당국이 1050원선 방어를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어도 좀처럼 상승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외환당국이 방어선 후퇴 결정을 내리기라도 한다면 환율 급등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엔/달러 환율은 105엔대로 하락했다. 105엔선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닛케이지수 급락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

증시 자체적으로도 문제투성이인데 FX 동향마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그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으며 지뢰밭을 걷는 느낌이다.

단기간에 상황 개선 확률이 희박해서인지 아니면 주가 하락에 지쳐서인지 스태그플레이션과 고유가를 인정하는 쪽의 증권사 리포트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장화탁 동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총공급곡선을 왼쪽으로 이동시켜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물가를 높이는 변수로 △에너지비용과 같이 임금과 무관한 생산비용의 증가 △노동자의 임금 인상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노동부족을 야기하는 파업이나 흉작을 야기하는 기후악화를 꼽으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경제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추상적으로만 보지 않고 현실적인 상황으로 인정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해결책으로는 경기보다 물가안정, 즉 기대인플레이션을 잡는 정책대응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공급곡선을 우측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최선책이 양(+)의 충격을 가해 경기와 물가를 동시에 조절하는 것이지만 경기를 희생하더라도 물가를 안정시키는 차선책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고 있다.
경기를 부양한다고 어설프게 총수요확대정책을 실시하는 것을 최악의 정책으로 지목하고 있다.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선 국제유가(WTI) 문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고유가의 주범으로 알려진 달러약세나 투기거래가 근본 원인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상현 CJ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유가 상승의 원인을 단순히 달러 약세 때문이라고 돌리기에는 각종 수급 및 자금흐름 여건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며 "투기적 거래가 유가 급등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시장이 간과하고 있는 수급 데이타는 최근 유가 상승을 뒷받침해주고 있으며 과거 평균치를 크게 밑돌고 있는 미국내 정유설비 가동율과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비축 확대에 나서고 있는 등의 요인 때문에 현 유가가 단기간에 급락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PER(주당순익배율)이나 PBR(주당순자산가치), 그리고 단기 낙폭 과다에 따른 밸류에이션 등의 접근은 의미가 없다는 회의론이 등장한 가운데 고유가와 스태그플레이션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향후 장세관도 크게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월말 월초에도 미증시가 상승하지 못하게 된다면 '지금 주식을 사서 묻어둘 때'라는 얘기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공산이 있다.
3년후, 10년후 장세를 기대하는 낙관론이라면 당장은 증시에서 발을 빼고 턴어라운드를 확인한 뒤 매수에 가담해도 늦지 않는다.

7월 첫 거래일에도 주가가 떨어진다면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현실적인 논리가 보다 많이 부상할 것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