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이는 경기, 속 타는 정부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6.3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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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물가·수지 '3각 딜레마', 대출금리도 급등
- 환율 하락 유도, "경제원리에 역행" 지적
- 원로 교수 "국민에 상황 설명하고 이해구해야"


 경기는 내려가고 물가는 뛰어오르는데 경상수지는 지난 5월까지 6개월째 적자다. '성장-물가-경상수지'의 3각 딜레마(트릴레마)다. 도무지 정부가 쓸 수 있는 대책이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올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 이상이 확실시된다. 지난 4월 이미 4%를 넘었고 6월에는 5%대에 들어설 전망이다. 정부 역시 올해 4%대 물가상승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국제유가 급등이 물가상승의 가장 큰 요인이다. 국제유가를 대표하는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은 지난 27일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섰다. 한국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금리라도 올려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 물가 부담을 덜고 싶지만 경기가 발목을 잡는다.



 지난 5월 경기선행지수와 경기동행지수는 4개월째 동반 하락세를 이어갔다. 선행지수는 6개월째, 동행지수는 4개월째 내림세다. 신규 일자리수도 지난 3월 이후 줄곧 20만개를 밑돌면서 정부 목표인 연간 35만개는 커녕 25만개도 쉽지 않다.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지만 물가 때문에 금리를 낮추지도 못한다. 이미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런 사정을 고려해 당분간 금리를 동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정부는 물가를 잡기 위해 환율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 환율을 내려 수입물가 부담이라도 낮춰보자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환율을 1040원 아래로 묶어두기 위해 수십억달러 어치의 달러를 매도했다.

 문제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30일 원/달러 환율은 1046원으로 지난 거래일보다 4.5원 올랐다. 경상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 국제유가 급등으로 원유수입 결제를 위한 달러 수요가 늘어난데다 미국의 신용경색 우려마저 재차 불거지며 달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을 아래 쪽에 묶어두겠다며 외환보유고를 헐어 달러를 풀 경우 향후 대외건전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또 한국 정부가 환율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려 한다고 알려질 경우 투기자본이 유입되면서 국내 유동성이 늘어나 오히려 물가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낮은 환율은 현재 적자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경상수지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물가를 위해 원화를 강세(환율 하락)로 운용하면 좋지 않느냐 하는데 경제정책은 원리에 맞게 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또 "원화가치를 절상(환율 하락)하려면 엄청난 개입을 해야 하는데 경제원리에 역행하는 조치여서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정부 대책이 효과를 보기 힘든 상황이니 섣부른 단기 대책에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 안목에서 경제 왜곡을 해소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전직 관료는 "가장 쉬우면서 어려운게 경제대책"이라며 "경제는 손대지 말고 지켜보다 왜곡만 바로잡아 주면 되는데 뭔가 해보려 하다가는 망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한 원로 교수는 "지금처럼 스태그플레이션에 가까운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은 거의 없다"며 "어설픈 정책을 펴다간 오히려 나중에 경기반등만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국민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는 등의 차분하고 원칙있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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