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만드는 '진정성'이 없다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2008.07.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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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칼럼]

도쿄 중심가에는 황궁에 납품하던 오래된 가게들이 지금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살아 있다. 수백년 전에 사찰과 고궁을 짓던 목수를 창업자로 하는 건설회사가 21세기에도 사업을 하고 있다. 오사카에는 지금도 덮밥 한그릇을 먹으려고 끼니때마다 긴 줄이 늘어서는 300년이 넘은 식당이 있다. 교토에는 역사적인 유적뿐 아니라 닌텐도와 교세라, 무라타제작소같은 글로벌 경쟁력을 자랑하는 전문 기업들이 여럿 들어서 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작고 오래된 단품 박물관이 사람의 발길을 묶곤 한다. 전시품은 수예품이나 인형, 미니 자동차, 건물 모형 등 하나씩 보면 별 것 아니다. 그런데도 긴 세월동안 수집하고 분류해 놓으니 역사의 숨길이 베어나게 된 것이다. 고물과 골동품, 잡동사니 창고와 박물관 간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종로에는 조선왕실에 납품하던 육의전이 왜 남아있지 않을까? 아니 육의전이 자신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기업조차 없을까? 비취색 청자와 소박한 백자를 굽던 장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고궁과 사찰을 짓던 명장들의 후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서울이나 지방이나 백화점 엘리베이터를 타면 빽빽이 들어찬 쇼핑객들이 들고 서있는 가방이 저마다 엇비슷하여 놀라게 된다. 루이비통이나 프라다같은 가방이 한국에서는 유니폼처럼 흔하다. 이렇게 가짜라도 명품만 고집하는 우리들인데 우리가 만든 세계적 명품을 무엇일까? 명품의 탄생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명품기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좋은 기업을 만들려고 수 없이 선진기업을 벤치마킹하지만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외양뿐이다. 토요타 방식을 배우려고 많은 회사들이 토요타자동차 공장을 방문했지만 제2의 토요타는 만들 수 없다. 결국 토요타웨이(Toyota way)의 비밀은 ‘학습 DNA’라고 하지 않는가. 형질이 다른 남의 DNA를 내게 이식할 수는 없다. 되지도 않을 일인데다 남는 것은 부작용일 뿐이니까.

명품을 만드는 것은 ‘진정성’이고 ‘사랑’이다. 내가 만드는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최고의 것이 나온다. 사회적인 신뢰를 얻게 되고 브랜드 가치를 쌓게 된다. 시대를 넘어 대를 잇게 되고 역사가 된다. 명문대를 나와 우동집과 덮밥집을 이어받는 후손을 만든다. 잡동사니 창고가 아닌 물건 하나하나에 애정이 깃든 박물관을 만든다.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개성이 탄생한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나오게 되고 미래의 희망이 된다.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것이 명품이다.

한국은 지금 흉내와 짝퉁이 판을 치고 있다. 상품이 그렇고 기업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도시가 그렇다. 길거리에서는 짝퉁 가방과 옷이 팔리고 사람들은 비슷한 가짜를 입고 메고 다니며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있다. 장인정신보다는 면피와 눈가림과 술수가 경영기법을 가장하고 있다. 학생들은 개성을 잃고 명문학교라는 브랜드의 노예가 되어 짝퉁인생으로 내몰리고 있다. 도시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허접한 디자인의 건물이 한국의 미를 없애고 있다.


정책에도 예외가 없다. 진정성이 담기지 않으면 부실 정책이 되고 짝퉁 정책이 된다. 불신이 쌓이고 촛불이 번지게 된다. 사람도 기업도 나라도 명품이 되려면 이제 진정성을 통해 신뢰를 재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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