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장관의 학구적인 성향도 모친을 닮았다. 이장을 지낸 강 장관의 부친은 '학자'보다는 '무인'에 가까웠다. 반면 모친은 선비 집안에서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강 장관이 어릴 적 소설가를 꿈꾼 것도 모친의 영향이 컸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뒤에도 강 장관의 모친은 합천 해인사에서 불경 공부에 심취했다.
때문에 형제 중에서도 강 장관은 모친과의 정이 특히 두터웠다. 부친과 모친이 다툴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 "어머니께 왜 그러시냐"며 부친을 막아선 것도 강 장관이었다. 모친이 해인사에 머문 뒤로 강 장관은 모든 휴가를 해인사에서 보냈다. 강 장관 스스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에도 그랬다.
강 장관 모친이 지난 25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기독교로 개종한지 1년, 부군을 먼저 떠나보낸지 26년만이다. 10년간 야인으로 떠돌며 고생하던 셋째 아들이 기획재정부 장관이 되는 모습을 지켜본 뒤다.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빈소가 차려졌다. 강 장관도 25일 오후 7시부터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았다. 한승수 국무총리, 정정길 대통령실장,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첫날 빈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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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를 누렸다고 하지만 조문객을 맞는 강 장관은 좀체 표정을 풀지 못했다. 해인사에서 모친과 함께 휴가를 보내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셋째 아들이긴 하지만 둘째 형이 미국에 있기 때문에 상가에서는 강 장관이 두번째 상주다.
그럼에도 강 장관은 26일 잡혀있던 경제5단체장과의 조찬 간담회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했다. 상중이지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장관으로서 예정된 일정은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강 장관은 간담회가 끝난 뒤 다시 빈소로 돌아가 조문객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