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쇠고기 '협상→고시' 69일간의 상처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06.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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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협상에 따른 상처치유까지는 상당기간 걸릴 듯

26일 A4용지로 9장에 불과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이 발효되기까지는 엄청난 진통을 동반해야했다.

지난 4월18일 새벽, 우리측 협상대표였던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과 미국 대표인 엘렌 텁스트라 농업부 차관보가 악수를 나누면서 쇠고기 협상타결을 선언했다. 이 때만 해도 어느 누구도 이 선언이 '활화산'같은 폭발력을 지닐지 몰랐다.

미국산 쇠고기를 30개월 연령에 상관없이 전면개방키로 한 협상결과에 대해 '조공·굴욕협상'이란 지적이 일기는 했지만 광우병 위험성은 간과됐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4월29일 MBC 'PD수첩' 방송이 기폭제가 되면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우려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교복을 입은 여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나와 "광우병 걸린 미국산 소 싫어요"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정부는 그 때만해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의 응석 정도로 치부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수입하게 됐다", "불안하면 먹지 않으면 된다"며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급을 했다.

정부는 5월2일에는 '광우병 괴담'을 진정시킨다며 긴급기자회견을 열었으나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 채 "안전하니 먹어도 된다"는 인상만을 줬다.

이 기자회견은 도리어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해 대대적인 '촛불시위'의 시발점이 됐다. 5월2일 밤부터 시작된 촛불시위는 5월과 6월, 근 두달간 광화문을 밝혔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하지 않겠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5월20일에는 한·미 통상장관간 서한문 형태로 '광우병 발생시 수입중단'을 합의했다. 이틀뒤인 5월22일에는 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송구스럽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국민들의 상처난 가슴을 치유하지 못했고 '촛불민심'은 더 격화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5월29일 "6월3일에 고시를 관보에 게재하겠다"고 강공책을 선택했다 국민들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결국 정부는 다시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금지를 미국에 요청하겠다"며 관보 게제를 뒤로 미뤘다.

이런 가운데 6월10일 6·10항쟁 21주년을 맞아 개최된 촛불집회에는 서울에서만 수십만명의 인파가 광화문에 운집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정부는 '쇠고기 파동'이 국정의 '아노미 사태'를 부를만큼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자 청와대 비서진 일괄 교체와 내각 일괄 사의표명이란 '극약처방'을 내렸고 대국민 소통이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더 나아가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후 여론은 "그만하면 됐다"와 "아직도 멀었다"로 분화했다.
이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현지에서 '벼랑끝 담판'을 통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금지'를 관철시키면서 성난 민심이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숨죽였던 정부는 이에 자신감을 되찾고 24일 후속대책 공개→25일 고시 게재 요청→26일 관보 게재 등을 추진했다. 고시를 더 이상 미룰 경우 미국과의 신뢰관계에 금이 가게 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에 대해 야권과 반대진영에서는 정부의 '강공'을 "대국민 전쟁 선포"라고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사태 전개는 지켜봐야 한다.

협상 타결부터 고시 발효까지 꼭 69일. 한국은 엄청난 실험을 했다. 특히 PD수첩의 일부 내용이 잘못된 것이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의 실책뿐만이 아니라 촛불시위를 촉발시킨 시발점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69일간의 쇠고기 정국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한국 사회에 무엇을 남겼을까. 앞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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