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유동성 사이 '재정부의 딜레마'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2008.06.2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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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언급, 물가 심각 반영
-"유동성과 물가 관련 있다"
-마땅한 방안 없어 고민

기획재정부가 심상치 않은 물가 상승 탓에 유동성 고민에 빠졌다. 유동성이 물가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유동성 관리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그러나 마땅한 대책이 없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25일 '2008년 하반기 경제운용방향 관련 연구기관장 간담회'를 가졌다. 임종룡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간담회 브리핑에서 "연구기관장들이 시중 유동성과 관련,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많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임 국장은 그러나 "전체적인 유동성 상황에 대한 얘기만 있었고 물가와의 관계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유동성을 관리하기 위해 지급준비율 인상, 총액대출한도 축소 등의 정책을 고려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도 "중앙은행에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간담회에서는 전혀 그럼 문제에 대해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정부에서 유동성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물가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강 장관은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6월) 소비자물가가 지난달보다 올라갈 것"이라며 "물가와 민생 안정이 하반기 경제운용의 최우선"이라며 물가를 강조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강 장관이 이날 간담회에 준비해간 모두발언 관련 노트다. 이 노트에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비용측면에서 구조적이고 미시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수요측면에서 다양한 유동성 관리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강 장관은 그러나 이 내용을 언급하진 않았다.

강 장관은 지난 2월29일 취임 즈음엔 "현재의 물가 오름세는 국제유가와 곡물가 인상 등 대외 여건 탓으로 중앙은행의 유동성 관리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당시 외부 요인이 물가 상승의 원인인 만큼 금리 인상으로는 잡을 수 없으며 차라리 경기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도록 금리라도 내리는 편이 낫다는 의견으로 해석됐다.

유동성에 대한 강 장관의 관점이 4개월도 채 안돼 180도 바뀐 것이다. 이는 물가 불안이 심각해지며 서민들이 체감하는 고통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1년 6월(5%) 이후 6년11개월만에 5%대로 올라설 것이 확실시된다. 이같은 고물가는 올 하반기까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의 고공행진은 물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외부 여건 때문이다. 그러나 유동성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로 재정부 관계자는 "유동성과 물가와 관련이 없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4월 광의의 통화(M2)는 1339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14.9%가 증가했다. 이는 지난 1999년 6월 이후 9년만에 최고 수준이다. 더 넓은 범위의 광의의 유동성(L)도 4월에 전년비 14.9%가 늘어 5년5개월만에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다.

문제는 유동성을 관리할만한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경기가 급속도로 하강하고 있는 시점에 유동성 관리에 가장 확실한 금리 인상 카드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엔 부정적이다. 금리가 당분간 동결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은은 지준율 인상이나 총액대출한도 축소 등에 대해서도 유동성을 줄이는 효과는 미미한 반면 부작용이 많다는 생각이다.

한은은 유동성 문제와 관련,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세금환급 등 재정지출 확대가 유동성을 자극할 수 있다며 재정부가 재정지출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재정부는 "물가 때문에 민생대책을 미룰 수는 없지 않느냐"라며 곤란하다는 반응이다. 이래저래 물가와 민생대책 사이에서 방법이 없는 셈이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물가를 잡으려다가 내수 위축을 촉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유동성 조절은 신중해야 한다"며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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