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공포, 채권시장을 뒤덮다

더벨 황은재 기자 2008.06.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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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물 거래 부진, 피(채권 유통)가 안돈다"

이 기사는 06월23일(17:13)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채권시장을 뒤덮었다. 채권 투자자들은 투매에 나섰고, 현금 보유에 열을 올렸다. 중장기 채권금리는 폭등했고 초단기 금리는 급락했다. 시중 자금은 빠른 속도로 단기화되고 있다.



23일 채권시장의 금리 급등은 '한국은행이 지급준비율 인상을 검토한다'는 보도로부터 시작됐다. 인플레 우려로 채권 매수 심리가 취약해진 시장으로서는 대형 악재를 안고 장을 열었고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에 앞서 채권 팔자가 먼저 나왔다.

한은은 언론을 통해 "지급준비율 인상을 검토한 적이 없다", "사실 무근이다"라며 해당 부서의 팀장부터 담당 국장, 부총재보까지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시장 심리를 달래기보다는 오히려 '지준율'이라는 말에 놀라 채권 매도가 더 늘어났다.



채권시장에 자리잡은 '인플레이션 공포'를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환율을 끌어올리던 정부가 달러 매도 개입을 단행하면서 물가 잡기에 나섰고, 한은도 인플레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어 시장의 인플레 경계심리는 컸다.

인플레 경계심은 한은이 정책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계산을 동반했다. 한은의 거듭된 지준율 관련 해명에도 채권시장은 반응하지 않았던 배경으로 풀이된다.

5월 소비자물가가 전년동월대비 4.9% 상승했고 6월에는 6% 가까운 오름세를 보일 것이란 예상도 제기되고 있다. 예상이 현실이 된다면 국고채 3년물 금리가 5.9%에 있는 것이 혹은 6.0%에 있는 것이 부자연스러울 게 없어 보인다는 것. 오히려 물가 상승률보다 낮은 국고채 금리가 더 이상하다는 시각이 맞지 않느냐는 견해이다.


인플레에 대한 우려는 채권 유통시장의 흐름도 바꿔놓고 있다. 국고채 지표물 위주로 거래가 형성되면서 비지표물의 경우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투자자의 부재는 매도자가 적절한 시기에 매도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 매도자의 선택은 국채선물 등의 파생상품으로 이동한다. 파생상품 가격은 떨어지고 다시 기초자산인 현물 가격을 동반 떨어뜨렸다. 채권시장 한 편에서는 가격 하락이 '과하다'는 시각을 내비쳤지만 누구도 먼저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못했다.

시중은행 채권운용역은 "채권시장을 몸으로 비유하면 유통시장에서 피가 돌지 않고 있다"며 "결국 방법은 다른 금리 상품을 통해 헤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금리 속등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환율이 오르면, 물가 우려가 더 부각됐고, 외화채권 발행에 따른 부채스왑이 스왑시장의 달러 유동성을 흡수해 국채선물 시장으로 넘어오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숏에 숏을 더해갔다.

이렇게 되자 채권시장 심리는 주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 마감을 앞두고 하락폭을 전일대비 30틱까지 줄이던 국채선물은 다시 58틱까지 낙폭을 벌였다. 채권 매수심리가 무너졌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반면 시중 자금은 채권시장을 이탈하고 있다. 인플레 상황에서 고정금리를 주는 채권을 사기 보다는 현금으로 보유하면서 투자시기를 늦추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채권금리는 이날 0.17%포인트 상승했지만 하루짜리 콜금리는 0.43%포인트 떨어지는 상황을 연출했다.

금리 급등은 반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남겨뒀다. 국채선물 미결제 잔량은 하루 새에 8300여 계약이 증가했다. 국채선물 매도 포지션에서 정리에 나설 경우 금리 반락 여지도 있다.

다만 채권시장을 둘러싼 인플레, 통화정책 우려 등의 변수의 시계가 좀 더 명확해지거나 과매도 논리를 앞세운 기술적 가격 상승 시도가 필요한 때라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금리 반락이 커질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앞서 시중은행 채권운용역은 "인플레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융 자산 가운데 가장 서자 격인 채권의 운명을 보는 듯하다"고 이날 채권 시장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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