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2.0] 설득의 경제학과 주식시장

손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2008.06.2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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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2.0] 설득의 경제학과 주식시장


거래 체결을 위해 협상 중인 법률가,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영업사원, 기획안을 발표하는 회사원, 용의자를 수사하는 형사. 이들의 공통점은 성공적인 업무수행을 위해 모두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설득은 경제행위에서 중요한 투입요소입니다. 자본과 노동이 투입되어도 설득을 통한 합의와 결정이 없으면 계약 체결, 상품 판매, 기획안 채택, 용의자 기소 같은 경제활동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맥클로스키와 클레이머 교수는 1995년 전미경제학회지(AER)에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1은 설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직종별로 설득이라는 과정이 부가가치를 얼마나 높이는지를 추정하고 직종별 생산량을 감안해서 계산한 것입니다. 예컨대 위에서 언급한 직종을 보면 거래체결을 담당하는 법률가는 설득이 전체 부가가치 생산의 100%, 영업사원과 회사원은 75%, 형사는 50%를 차지하는 투입요소라고 가정했습니다.

설득의 중요성은 주식시장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합니다. 자산관리매니저, 주식브로커, 애널리스트 모두 다양한 수단을 통해 서로 설득합니다. 이 과정 없이는 최종 투자결정이 잘 이루어지 않습니다. GDP 계산에서도 그렇지만 주식시장 이론에서도 '설득의 가치'는 빠져 있습니다.



하버드대학의 멀레이네이든과 슐라이퍼는 'Persuasion in Finance'(2006년)라는 논문에서 행태적 설득이론을 구성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설득의 주된 기능을 정보의 제공이라고 가정합니다. 여기서는 설득이 유용한 정보 제공없이 상대방이 의심없이 믿고 있는 어떤 사실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제공하는 과정이라고 상정했습니다.

이들은 닷컴버블 전후의 10년간 투자회사의 광고문건을 분석했습니다. 상승장에서는 과거의 수익률을 명시하는 광고가 많았던 반면 하락장에서는 과거 실적을 누락한다는 겁니다. 특히 하락장에서는 시장평균보다 월등한 실적을 거두어도 절대적인 수익률이 낮으면 이를 홍보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유사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투자에 대한 2가지 생각이 공존합니다. 성장(growth)과 보호(protection)입니다. 성장은 부자가 되는 길이고 보호는 노후에 대비해 자산가치를 지킨다는 개념이며 각각 탐욕과 공포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메릴린치는 닷컴버블이 한창 형성되던 시점에서는 'Be bullish'라는 광고카피를 사용해 투자자의 성장욕구를 자극했습니다. 이후 버블이 꺼지면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단계에선 'Ask Merrill', 그 이후에는 이 둘을 아우르는 'Total Merrill'이라는 광고카피를 사용했습니다. 이들 카피의 특징은 모두 새로운 정보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또 1990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러는 소형주 전용 투자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늘 두 종류의 광고물을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소형주의 실적이 좋을 때는 소기업의 수익률이 평균적으로 대기업보다 높다는 '소기업효과'를 설명하는 광고물을 내보이고, 소형주 실적이 나쁠 때는 소형주를 이용한 '분산투자효과'를 홍보한다는 겁니다.



투자회사의 광고는 아무런 유용한 정보 없어도 펀드 유입에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투자회사의 광고를 통한 설득의 방향은 전형적으로 상승장에서 매수세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이 2가지가 결합되어 설득의 과정은 시장의 불안정성을 증폭하는 역할을 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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