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노리는 '1사장 10중개소'

머니투데이 송복규 기자 2008.06.24 07:21
글자크기

[피라미드 중개업소①]편법업소, 가격상승 주범

편집자주 올들어 서울 재개발 지분값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명박 정부가 신도시 개발보다 도심 재개발을 활성화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개발이 부동산 투자 1순위 상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3.3㎡당 1000만∼2000만원짜리 재개발 지분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고 이제는 서울 대부분 지역의 지분값이 3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문제는 기존 2∼3차 뉴타운은 물론 개발 계획이 확실치도 않은 4차 뉴타운 후보지까지 지분값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재개발 지분값 급등의 중심에는 피라미드와 같은 점조직을 형성해 사실상 매물을 독점하고 가격을 조작하는 중개업자들이 있다. 시장 질서를 흐리는 이들의 중개 영업이 자행되면서 제값보다 훨씬 비싼 '폭탄매물'이 양산되고 있다. 재개발 지분값 급등의 주범, '피라미드 중개업소'의 실체를 살펴봤다.

#1. "손님, 지하철로 오실건가요? 우리 사무실까지는 한참 걸어야 하니까 까치산역 근처 OO중개업소에서 봬요. 거기도 저희랑 같은 사무실이랍니다." 전화로 재개발 투자상담을 받던 회사원 임모(35)씨가 중개업자에게 사무실 위치를 묻자 이 같은 답변이 온다. △△중개업소에 전화했는데 OO중개업소에서 만나자고 하니 임씨는 어리둥절하다. 강서구 화곡동 OO중개업소에서 만난 중개업자는 너무나 익숙한 자세로 임씨에게 시장 상황을 전달하고 매물을 소개한다. 컴퓨터, 전화 등 사무실 비품을 다루는데도 거침이 없다.

#2. 서울 용산구 한강로의 한 중개업소. 오피스텔 전세 계약을 체결한 손님과 중개업자가 중개수수료를 놓고 실랑이를 벌인다. 손님은 "중개수수료를 깎아 달라"고 요구한다. 중개업자는 "명의만 사장일 뿐 실제 사장이 따로 있어 마음대로 깎아줄 수 없다"고 맞선다.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사업자등록증이나 전세계약서 중개업소 대표 이름란에는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중개업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재개발 노리는 '1사장 10중개소'


서울 강서구 화곡동 등 재개발 지역에 일명 '피라미드 중개업소'가 활개를 치고 있다.

'피라미드 중개업소'는 한 사람이 같은 지역에서 다른 사람 명의로 여러 개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점조직 형태의 중개업소를 말한다. 이들은 주로 '조직(?)'내 중개업소끼리 매물을 독점하고 지분 가격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영업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강서구 화곡동에서는 1명의 중개업자가 10여 개의 '피라미드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화곡동 지하철 역세권과 주택가 곳곳에 중개사무실을 내고 영업을 하는 것이다.

◇'이름만 사장'인 실장들…"뛰는 만큼 번다" 거래 혈안='피라미드 중개업소'의 각 사무실 상호나 사장은 모두 다르다. 사무실 위치나 규모도 다양해 일반인들은 이들의 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실제 사장은 1명이다. 실제 사장은 사무실 운영비용을 대고, '이름만 사장'인 실장들은 영업만 한다. 실장들 밑에는 매물 관리, 손님 연결 등 작업을 돕는 보조 직원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아직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는 '공인중개사 시험준비생'이 많다.


거래 성사에 따른 중개수수료는 사장과 실장들이 절반씩 나눠 갖는다. 매달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성사한 만큼 자신의 수입이 결정되는 '성과급' 체제여서 실장들은 발로 뛰며 매물을 찾고 손님을 잡는다.

◇"한 건 더하는 게 남는 장사"… 매물 독점 폐해 속출=1명이 동시에 10여 개의 중개업소를 운영하려면 적잖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한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면 남들이 놓치기 쉬운 사각지대 매물까지 확보할 가능성이 커 상당한 이익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15년째 중개업을 하고 있는 A씨는 "재개발 시장에서는 매물수가 곧 중개업소의 경쟁력"이라며 "임대료가 싼 변두리 사무실의 경우 한 달에 매물 1∼2건만 확보해도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피라미드 중개업소'는 일반 중개업소와 매물을 공유하지 않고 조직력을 이용해 독점 거래를 추진한다. 매물만 독점하면 가격 조작은 '식은죽 먹기'다. 간판은 다르지만 사실상 모두 같은 중개업소이기 때문에 투자자는 제대로 된 시세 검증이나 가격 흥정은 포기해야 한다. 일반 중개업소는 영업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법망 피한 편법… 적발 어려워=1명의 중개업자가 같은 지역에서 여러 개 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 신고에 관한 법률' 제13조 1항에는 '중개업자는 그 등록관청의 관할 구역 안에 중개사무소를 두되, 1개의 중개사무소만을 둘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피라미드 중개업소'는 이같은 법망만 피한 편법이다. 서류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거래 내역 등을 전수 조사하기 전까지는 편법 행위를 적발하기 어렵다.

화곡동의 한 중개업자는 "같은 중개업자끼리도 피라미드 업소인지 아닌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10년 넘게 중개업을 하고 있지만 지자체 단속에 걸려 처벌받는 건 한 번도 못 봤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