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ㆍ한국금융, 엇갈린 베트남전략

더벨 전병윤 기자 2008.06.2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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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

이 기사는 06월20일(09:00)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베트남 경제가 위기에 휩싸였다. 베트남 정부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두 달새 금리를 5.25%포인트나 올리는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폈다.



증시는 올 들어 70%가까이 폭락했고 외국인 투자금은 썰물처럼 빠져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재차 인플레이션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에 빠졌다. 베트남의 공항 면세점에서조차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통화가치 급락으로 자국통화를 받지 않는 사태에 이른 걸 보면 충격이 생각보다 크고 장기화될 우려도 있다.

그간 급속히 성장한 탓에 단기 조정을 겪는 것인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외환위기 체제로 빠져들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분명한건 잘 나가던 베트남 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는 사실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베트남투자에 팔을 걷어 붙였던 국내 금융사들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미래에셋그룹이 이를 기회삼아 본격적인 베트남 투자에 나설 채비여서 눈길을 끈다.

미래에셋은 중국·인도·브라질과 같은 이머징 마켓이라면 첨병역할을 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투자했지만 유독 베트남에 대해선 한발 물러나 있었다. 흉흉한 분위기속에서 뒤늦게 투자에 나서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래에셋그룹의 부동산·사모투자펀드(PEF)와 같은 대체투자를 전담하는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정상기 대표이사를 만난 자리에서 답을 얻었다.

정 대표는 사무실 한 켠에서 베트남의 호치민시 중심부가 상세히 그려진, 조금은 낡은 지도를 꺼냈다.



"베트남 부동산 시장은 이미 2년 전부터 검토해 왔지만 아직 투자를 못 했습니다. 투자자들이 갑자기 몰리다보니 가격이 너무 뛰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서 대출을 끼고 건물을 샀던 투자자들이 연 20%를 넘는 이자 부담 탓에 급매물을 싸게 내놓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투자할 시기가 왔다는 신호죠."

압축하자면 저가매수 타이밍이 왔다는 얘기이다. 남들이 투자하지 않을 때를 기회로 삼는 '소수의 편에 서라'는 박현주 회장의 투자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미래에셋은 줄곧 도심지역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오피스 빌딩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경제가 성장하면 노른자에 위치한 오피스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경우 무리해서라도 높은 가격을 써내 경쟁자를 제치고 빌딩을 매입한다. 베트남도 중심지역의 급매물만 노리고 있다. 확신이 서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미래에셋의 투자성향을 고려할 때 앞으로 본격적인 베트남 투자에 나설 것임이 확실하다.

베트남 주식 투자도 비슷한 견해다. 정 대표는 "베트남은 자본시장의 성장단계로 보면 초기인데다 펀더멘탈에 비해 자산가격에 거품이 있었다"며 "공격적으로 투자하기엔 위험이 커 주식형이 아닌 주식혼합형으로 내놓았고 올 초에 과열 조짐이 보여 주식편입비율을 10%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은 투자를 감행하기엔 '2%' 부족했지만 적당한 조정으로 인해 투자매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게 미래에셋의 판단이다.



반면 베트남 투자 열풍을 이끈 한국금융지주는 최근 들어 풀이 꺾인 모습이다. 베트남 경제 위기론의 진앙지 역할을 한 다이와증권의 리포트가 나오자마자 한국투자증권은 여전히 장기전망이 밝다는 반박성 자료를 낸 바 있다.

투자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려 하고 있지만 노심초사하긴 한국금융지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투신운용에서 첫 선을 보였던 베트남펀드는 한국투자증권 지점을 통해 단기간에 4000억원 가까운 자금을 모았다. 다른 회사도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베트남펀드의 총 수탁액이 1조6000억원으로 불어났다.



베트남 증시의 시가총액이 14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자금이 베트남의 거품을 만드는데 한 몫 한 셈이다.

대부분의 베트남펀드는 일정기간이 지나야 환매할 수 있는 폐쇄형펀드라 대량 환매사태로 번지진 않았지만 수익률이 마이너스 40%에 육박한다. 단기간 수익을 회복하기도 쉽지 않아 한국금융지주의 입장은 갈수록 난처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

한국금융지주는 베트남 부동산투자도 한발 앞서 나갔지만 삐끗거리는 모습이다. 지난해 건설사업에 자금을 빌려주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비롯,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1200억원 규모의 베트남부동산펀드를 설정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부동산 투자 실적이 전체 자산의 10%에 불과하다. 부동산 가격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뛰어 투자 타이밍을 놓쳤던데다 일부 사업에서 토지 인허가 등의 문제가 생겨 차일피일 미뤄지는 돌발 변수도 생겼다.

이처럼 베트남은 아직 제도와 시스템이 불투명해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한국인의 과감성은 일본인의 보수적인 성향보다 투자에 있어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투자는 수익과 위험이란 바퀴가 동시에 굴러가는 법이다.



개척자 정신을 살리려면 위험관리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리스크가 커서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의 시가총액이 작아 유동성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만큼 베트남 증시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기 때문에 투자해도 문제 없다"는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한 생명보험사 자산운용담당 임원은 "일부 금융회사는 베트남에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면서 '메콩강'에 폭우가 쏟아지듯 어느날 외국인 자금이 베트남으로 몰리면 자연스레 유동성 위험도 해결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폭우는 쏟아지지 않았고 결국 위험은 현실화됐다.

이 상황에 대한 두 금융그룹의 대조적인 접근 방식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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