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비용 6가지 의문점

머니위크 황숙혜 기자 2008.06.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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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는 A 씨는 가입한 펀드가 하나도 없다. 금융권에서 일한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으레 '좋은' 펀드를 골라 재테크를 잘 하리라 여기지만 전혀 예상밖이다.

"비용이 너무 비싸요."



A 씨가 펀드를 멀리하는 이유다. 가입과 환매 시점, 그리고 투자 기간 중 정기적으로 빠져나가는 보수까지 펀드에 부과되는 비용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

펀드 비용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단순히 너무 높다는 볼멘소리부터 비용의 대가로 받는 서비스의 부실, 손실이 발생해도 운용보수를 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까지 투자자들의 지적은 다양하다.



펀드 비용,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비용에 얽힌 문제와 개선 방안을 생각해보자.

◇ 판매수수료 '일물일가' 원칙?

지난 3월 미국에서 출간된 에서 저자 루이스 로웬스타인(Louis Lowenstein)은 뮤추얼펀드 산업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운용 성과나 시장 상황과 관계 없이 펀드의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해당 기업들이 살찌게 되는 구조를 지적했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펀드는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실상 수수료를 책정할 때에는 이 같은 원리가 배제된 측면이 적지 않다.

우선 펀드를 가입할 때 지불하는 선취판매수수료부터 그러하다. 'OO펀드'라는 상품에 10만원을 투자할 때나 1억원을 투자할 때나 똑같은 수수료율이 적용된다. 수수료율이 1%라면 10만원을 투자할 경우 1000원, 1억원을 가입할 때 100만원의 수수료가 부과되는 셈이다.

똑같은 수수료율을 적용한 데 따라 절대 금액은 1000배의 차이가 벌어진다. 하지만 판매사가 거액을 투자하는 고객으로부터 큰 금액의 수수료를 받는 만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까. 굳이 서비스의 질적 측면을 계량화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비스의 차별화는 현실과 거리가 먼 일이다.

업계에서는 규모의 경제라는 특성을 감안, 펀드 가입 금액이 클수록 수수료율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자산운용협회(ICI)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금액별로 차별화된 수수료 체계가 관행으로 자리잡혀 있다. 가령 1만 달러(5000달러), 10만 달러(5만 달러), 100만 달러(50만 달러)를 기준으로 금액이 높아지는 만큼 선취판매수수료를 낮춰주는 식이다.

자산운용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조업 상품과 마찬가지로 펀드에 일물일가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며 "운용업계에서는 금액별 차등화를 원하지만 판매사 측의 이견으로 실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 장기투자? 보수부터 낮춰야

성공하는 펀드 투자 원칙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 중 한 가지가 장기투자이다. 펀드 선택보다 시장에 머무른 시간이 성패를 좌우하며 투자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오래 투자할수록 수익률이 높더라'는 것 이외에 투자자들에게 장기투자를 권장할 만한 실질적인 유인책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판매수수료와 마찬가지로 규모의 경제를 감안한다면 펀드 자산에서 정기적으로 빠져나가는 보수 비용도 투자 기간이나 자산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펀드에서 빠져나가는 운용ㆍ판매ㆍ일반사무ㆍ수탁 등의 보수는 펀드 자산을 기준으로 일정 비율대로 책정된다. 하지만 모든 비용이 펀드 자산 규모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규모의 경제 원리에 따라 자산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비용 증가율이 낮은 측면이 있을 뿐 아니라 비용 상승이 자산 크기보다 고객 수의 증가에서 비롯되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인 보수율을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 운용 비용, 정률제의 모순

정액제가 아닌 정률제를 채택한 데 따라 규모의 경제 원리을 간과한 사례는 또 있다.

펀드 운용과 관련된 비용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에서는 운용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정액제를 적용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정률제를 따른다.

가령 채권평가 수수료를 미국에서는 건당 일정 금액으로 지불하지만 국내에서는 자산 대비 일정 비율로 책정하기 때문에 펀드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비용도 늘어나는 구조다. 회계감사 비용이나 지수사용료 등 운용과 관련된 다른 비용도 마찬가지다.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한 정률제를 채택함에 따라 타당하지 않게 비용이 늘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일례로 운용보고서를 발송할 때 들어가는 비용의 경우 고객 수가 증가하는 만큼 원가가 늘어나는 것일 뿐 펀드의 자산 규모에 비례해서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 판매보수, 어디에 쓰는 비용?

업계에 따르면 4월말 기준 주식형펀드의 판매보수는 평균 1.28%, 운용보수는 0.77%인 것으로 집계됐다.

펀드에 가입하는 주된 목적은 높은 수익을 올려 자산을 늘리는 것이고 이렇게 볼 때 무엇보다 운용이 투자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이라는 것이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상식이다.

반면 비용 측면에서 볼 때 투자자들은 운용보수보다 판매보수에 70% 가까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실정인데 판매사로부터 그만한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일까.

대표적인 판매사인 은행 측에서는 운용과 달리 판매와 관련한 비용은 고객 수가 늘어나는 만큼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펀드 운용과 같은 규모의 경제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여기에 소액을 투자하는 고객의 경우 정률제로 보수를 부과해 봐야 업무 원가에도 못 미치고 똑똑해진 투자자들이 자료를 포함해 요청하는 사항이 부쩍 늘어 업무 부담이 적잖게 늘어났다는 볼멘 소리도 빠뜨리지 않는다.

소액 투자자의 경우 판매사의 경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판매보수의 절대금액이 높은 고액 투자자를 위해 과연 그만한 서비스를 해 주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판매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펀드 가입과 유지, 환매 등 투자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주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채 소액 투자자에게서 발생하는 영업 손실을 고액 투자자를 통해 상쇄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선취판매수수료를 높이고 판매보수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투신사 관계자는 "펀드를 갈아타는 비용을 높임으로써 투자자들이 펀드 가입이나 환매를 보다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고, 판매보수 부담을 낮춰주는 것이 시장원리에도 맞다"고 전했다.

◇ 수수료 차별화? 현실성 논란

업계에 따르면 감독 당국은 서비스 내용에 따라 수수료를 차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펀드 비용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자 꺼내 든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차별화에 대해 동의하는 이들도 있다. 재정자문부터 정보 이용까지 서비스의 내용을 차별화해서 투자자들이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할 수 있게 하고 이용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만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얘기다.

반면 차별화의 현실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현재 시행중인 서비스만으로는 수수료 차별화를 시도할 만큼 그 내용이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비스의 질을 계량화한다는 것 자체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일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표적인 판매 채널인 은행 측에서는 차별화에 대한 공식적인 방안이 발표되기도 전에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펀드와 관련된 판매사와 운용사의 업무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시스템 측면에서 풀기 힘든 문제도 있기 때문에 서비스에 따른 수수료 차별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 펀드 고를 때 비용 따지지 말라?

바야흐로 '펀드 권하는' 사회다. 저금리와 자산 가격 상승 속에서 펀드 산업은 최근 몇 년 사이 급팽창했다. 부동산에 집중된 가계 자산이 금융자산으로 이동하는 것은 긍정적인 흐름이다.

비용에 관한 불만이 제기되자 펀드에 투자할 때 수수료나 보수 비용은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물론 비용은 펀드에 가입할 때 최우선적으로 따져야 할 사안은 아니다. 자신의 투자 성향과 목적을 분명하게 하고 그에 맞는 투자 자산과 상품을 고르는 전체 과정 중에 비용 문제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펀드 비용은 투자자가 간과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다. 비용 만큼 투자자의 손에 들어오는 수익률이 차감될 뿐 아니라 그 크기도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펀드는 고객이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수많은 재화 가운데 경제적으로 직접적인 마이너스 효용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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