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그 이상의 이상득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6.1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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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경제- 카스테라]

이명박 대통령은 ‘충신’을 자처하는 측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친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사실상 일선 후퇴를 요구하는 그의 ‘직언’에 "일부 의원들의 인신 공격 행위와 발언들이 걱정스럽다"며 더 이상 ‘형님’에 대해 거론하지 말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일각에선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친형에 대한 이 대통령의 애정이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살아온 길을 보면 ‘이상득 형님’에 대한 문제는 비단 혈육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 대통령에게 이 의원은 단순한 친형, 그 이상이다.

이 대통령이 이 의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 곳곳에 녹아있다. 이 대통령이 자랄 때 얘기를 풀어 놓으며 둘째 형인 이 의원에게 붙인 수식어가 '우리 집의 희망'이다.



이 의원은 이 대통령보다 키도 크고 인물도 좋았다고 한다. 게다가 동지상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상대에 입학한 수재였다.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족에게 이 의원은 집안을 일으킬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 대통령의 부모가 이 대통령과 여동생만 포항에 남긴 채 먼저 서울로 올라간 것도 이 의원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통령은 여동생과 남아 죽을 쑤어 먹으며 전액 장학금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간신히 야간 동지상고에 다니고 있었다. 이 때 이 대통령에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지 마라"고 격려한 사람이 이 의원이었다. 이 대통령은 상경한 뒤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상대를 지원한 것도 이 의원이 상대를 다닌다는 그 이유 때문이었다.

이 의원은 '희망'에 부응했다. 이 의원이 대학을 졸업하고 코오롱에 입사하면서 이 대통령의 집안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도 이 의원이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었던 덕이 컸다. 이 의원은 그들 가족의 평생 소원이었던 '내 집 마련’의 꿈도 이뤘다.


이 의원은 이 대통령의 '구세주'이었다. 이 대통령이 고려대 총학생회장 직무대행 시절 6.3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수배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찾은 사람도 이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서울과 부산에 이 대통령의 은신처를 마련해줬고 이 대통령이 자수할 때는 고향 출신의 형사를 소개해줬다.

그 후로도 이 대통령은 어려운 순간마다 가장 먼저 이 의원을 찾았고 이 의원은 그 때마다 이 의원은 방향을 제시해주며 ‘어른’으로서 조언해줬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측과의 경선 규정을 놓고 다툼이 벌어졌을 때 중재를 통해 해결한 것도 이 의원이었다.

"외로움은 자리의 높이에 비례한다"고 한다. '고독한 판단'의 무게 때문이다. 이 말이 맞다면 대통령은 적어도 우리나라 정부 내에서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도 특히 외로운 처지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겐 '상도동계'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겐 '동교동계'가 있어 '정신적 동지' 역할을 해줬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이른바 ‘친노 그룹’이 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뚜렷한 정파가 없다. ‘친 이명박계’ 의원들도 주로 서울시장 시절 만난, 길어야 5~6년 인연이 대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쇠고기 정국을 맞아 민심은 돌아서고 이 대통령의 이론적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류우익 대통령실장마저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처럼 고독이 깊어질수록 이 대통령은 수십년간 자신을 지켜준 친형 이 의원에 대한 애착이 강해질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형님이 뭘 잘못했다고’라는 억울한 심정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이 요구하는 인적쇄신, 국정쇄신은 그 고독과 애착마저 넘어서야 가능하다는 것을 이 대통령이나 이 의원은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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