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두 총장 "투자 없는 자율은 공허"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8.06.2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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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손 서강대 총장 겸 대교협 회장 인터뷰

- "대학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라면서 투자는 안해"
- "청사진도 없어...고등교육교부금법 달라붙을 것"
- "변화와 혁신, 자율과 경쟁의 물결 피할 수 없어"

예정보다 조금 늦게 인터뷰 장소로 나타난 손병두 서강대 총장(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은 매우 지친 모습이었다. 미리 건넨 '인터뷰 질의서'도 읽지 못한 눈치였다. 중국 출장을 다녀오자마자 쉼 없이 일정을 강행한 탓이었다.



그러나 막상 최근의 복잡다단한 교육 현안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술술 나왔다. 잠정 폐기된 초중고 영어 몰입교육에 대해 과감히 찬성 입장을 밝혔고, 사학법도 육성지원법이 아닐 바에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로스쿨 정원을 대폭 늘리고 경쟁력 없는 대학은 도태시켜야 한다는 데에도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교육 정상화가 선행돼야 하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평준화가 해체돼야 한다고 강조할 때에는 손 총장의 얼굴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얼굴이 오버랩되기까지 했다. 그만큼 새 정부의 교육철학을 완벽히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손 총장은 CEO형 총장답게 MBO(목표설정제), ERP(전사적관리) 등 기업경영기법을 다수 도입, 서강대 구성원들의 경쟁을 유도하기에도 여념이 없었다. 서강대 총장과 대교협 회장의 중책을 소화하느라 동분서주 중인 손 총장을 만나 교육계 현안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 전경련 등 경제계에 오래 몸담고 있다 학교로 옮긴 지 3년이 돼 가는데 어떻게 다른가.
▶ 경영이라는 원리에서는 같다. 그러나 문화는 많이 다르다. 기업문화는 목표가 설정되면 일사분란하게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의사결정 과정도 빠르다. 하지만 대학은 의사결정 과정이 느릴 뿐만 아니라 결정 뒤에도 계속 말이 나온다.(웃음)

- 연세대의 송자 전 총장이나 고려대의 어윤대 전 총장은 학교의 내적, 외적 발전을 많이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후 지난 3년 동안 기여했다고 자랑하실 만한 일이 어떤 게 있나.
▶ 우선 교수 임용과 승진의 기준을 대폭 높였다. 우수 대학이 되려면 우수한 교수가 와야 한다. 두 번째가 학사 혁신이다. 미래서강교육위원회를 만들어 끊임없이 커리큘럼을 바꾸는 등 교육과정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세 번째는 행정혁신이다. 기업의 팀제를 도입해 경쟁과 발전을 유도하고 있고, 성과에 의해 급여가 나갈 수 있도록 제도를 새로 바꿨다. 그 다음이 국제화다. 90년대 다른 대학이 국제화로 갈 때 가장 국제화된 서강대는 거꾸로 한국화로 갔다.

방향이 잘못됐던 것이다. 그래서 제가 들어와서 제일 역점 둔 게 국제화다. 우리 학생들은 전공과목 중 적어도 5과목 이상을 영어로 듣지 않으면 졸업을 못한다. 제가 왔을 때 12%밖에 안되는 영어강의 비율을 20%까지 높였고, 2010년에는 30%까지 비율을 높일 계획이다.



그리고 총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모두 이양하고 있다. 모금도 단과대 학장들이 알아서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을 학장으로 뽑고 2년 임기도 없앴다. 지금은 총장과 학장이 MBO(목표설정)를 체결한다.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면 그 다음이 진행된다. 기업경영의 좋은 점을 많이 도입하려 했다.

- 대학교에서 MBO는 생소하다.
▶ 지난 10년 동안 투자를 안해 ‘2010 프로젝트’의 6개 전략 중에 5개가 교육 인프라 부문이다. 이를 위해 1000억원 모금을 하고 있다. 지금 목표대로 잘 추진되고 있다.

- 최근 미국, 중국 등 장기 해외 출장을 다녀오셨는데 소감은.
▶ 세계적인 대학을 이끄는 총장들을 만나니 '나는 유치원생인데 저 분들은 대학생이구나' 이런 것을 느꼈다. 펀드레인징 노하우 등 경영도 대단하고 철학이나 학생을 가르치는 문제 등에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왔다.



- 세계인재 유치도 대교협 회장의 미션인 것 같다. 일본의 경우 우수 인재를 해외로 빼앗기다 보니 대학협의회 차원에서 도요타나 미츠비시 같은 기업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 아주 좋은 지적을 해 주셨다. 지난 4월 4일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말씀드렸는데 일본은 총리 직속 기관으로 '교육재생간담회'가 있다. 거기에서 2025년까지 대학교육이 이뤄야 할 각종 목표를 모두 제시하고 있다.

목표달성을 위해 정부가 대학에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계획 등이 다 나와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있지만 경제관계만 얘기하지 교육관계는 안 들어 있다. 그래서 따로 교육 경쟁력 강화방안을 만들 것 없이 위원회에 교육파트만 넣으라고 했다.

지금 중국만 하더라도 100개 대학을 집중 육성해서 세계 100대 대학에 넣겠다고 하고 있다. 대학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라고 하면서 그것에 대한 청사진이 없는 게 문제다. 자율도 좋고 다 좋은데 결국 재정적인 것 없이는 세계적인 대학이 안된다.



그래서 고등교육교부금법을 만들자고 대교협 회장 취임식 때 얘기한 거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면 가서 달라붙을 작정이다.

- 우리나라의 경우 지나치게 교육열이 높아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낮추기 위한 대책도 고민해야 하지 않나.
▶ 사교육비 문제는 비단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결책은 공교육이 정상화되는 길 밖에 없다. 공교육을 통해서도 충분히 대학에 갈 수 있으면 학부모들이 굳이 사교육을 시키겠나.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려면 고등학교를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교사도 평가하고…. 학교를 평가해 교육성과가 나쁜 곳은 폐쇄하겠다고 하면 선생들이 일치단결해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가면 사교육비가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 영어 문제가 심각하다. 대학에서 모든 학생들이 토익, 토플 책 들고 있다. 전공에 대한 지식탐구보다 너무 영어에만 매달리면 오히려 대학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것은 아닌가.
▶ 좋은 지적이다. 그러나 세계화시대에 영어를 모르면 방법이 없다. 엔지니어들도 세계적인 회사들과 서로 대화하고 얘기하는 수준이 돼야 살아남는다. 공교육이 정상화되기 위해선 평준화 정책을 없애야 한다. 지금은 지방의 대학이나 서울의 대학이나 붕어빵인데 이래서는 곤란하다.

- 영어 몰입교육 등 현 정부 들어 영어에 관한 이슈와 정책이 많이 쏟아졌는데 정부 정책에 공감하나.
▶ 터키대 부총장이 얘길 하는데 자기들도 처음에는 영어강의에 대해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70%밖에 못 알아들어도 영어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결국 세계적인 기업에 모두 취업이 되더란다. 반면 영어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들은 국내에만 남아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가서 일을 못했다며 영어수업을 지지했다.

- 사학법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 세계적으로 사학법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다. 사학법을 없애야 글로벌 스탠다드로 가고 대학의 경쟁력도 생기지 않겠나.



- 로스쿨 정원에 대한 대학들의 불만이 여전한 것 같다.
▶ 처음부터 3200명 정원이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해결책은 정원을 늘려주는 수밖에 없다. 정말 억울하게 떨어진 대학에는 정원을 주고 인가가 난 대학에도 일부 정원을 조정해서 경영이 되도록은 해 줘야 한다는 게 제 입장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경쟁력 없는 대학은 도태돼야 한다고 했는데 대교협 회장 입장에서는 곤란하실 것 같다.
▶ 저는 경쟁력을 갖추자는 것에는 동의하고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경쟁력 확보를 똑같은 방법으로 하려 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제주에 명문 관광대학을 만들면 서울 종합대 관광과 나온 것보다 선호될 게 아닌가. 전반적으로 변화와 혁신, 자율과 경쟁이라는 물결을 피할 수는 없지 않겠나.

(대담=방형국 전국사회부장, 정리=최중혁, 김지민 기자, 사진=임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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