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외국산 휘발유 들여온다

여한구.황국상 기자 2008.06.1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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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기준 완화"… '수입 0' 시장 재편 가능성

-정부 "최소 산소함유율 0.5% 세계 유일 규정"
-휘발유 산소함량 최소하한선 규제 철폐 추진
-환경부 "대기질 악화" 반대… 정유업계 '촉각'

지난 5월말 휘발유·경유값이 리터(ℓ)당 2000원을 넘어선 한 주유소 가격안내판. ⓒ이명근 기자지난 5월말 휘발유·경유값이 리터(ℓ)당 2000원을 넘어선 한 주유소 가격안내판. ⓒ이명근 기자


 정부가 치솟는 휘발유 가격을 잡기 위해 휘발유 환경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기준을 낮춰 외국산 휘발유 수입을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다.



 15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국제유가가 급상승하면서 국내 경제와 물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을 내세워 휘발유 함유물질 중 산소함량 최소하한선 규제 철폐를 추진 중이다.

 산소는 휘발유의 완전 연소를 도와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으며 우리나라는 1993년부터 휘발유 중 산소함유 최소하한선을 0.5%로 정해 운영 중이다. 최고상한선은 2.3%다.



 재정부는 지나치게 엄격한 최소하한선이 휘발유 수입 자체를 가로막는 '규제 전봇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최소하한선 0.5%를 맞추기 위해서는 MTBE(자동차 휘발유 첨가제) 저장시설과 파이프라인 설치가 필요한데 이에는 막대한 투자비용이 필요해 국제시장에서 휘발유값이 아무리 싸도 수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 규정으로 석유를 정제한 뒤 휘발유을 만들어 판매하는 국내 대형 정유사들이 휘발유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부는 최소하한선 규제를 없애 진입장벽을 낮추면 국내 가격보다 싼 외국의 휘발유를 수입할 수 있게 돼 유가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른 재정부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2005년부터 휘발유 최소하한선제를 폐지해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현재와 같은 비상상황에서 폐지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에 수입된 휘발유는 2002년 403만2000배럴로 전체 소비량의 5.9%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점차 감소해 2006년부터는 휘발유가 아예 수입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을 제외할 때 국내 휘발유값이 국제 가격보다 싸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6월과 올해 5월 두차례에 걸쳐 휘발유에 대한 할당관세를 2%포인트씩 인하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휘발유 수입은 전무하다시피하다. 이 때문에 재정부가 휘발유 함유물질 중 산소함량 최소하한선 규제 철폐까지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최소하한선 제도로 인한 환경오염 방지 효과는 무시한 채 경제적 효과만 따져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는 비판이 정부 내에서도 일고 있다.

대기환경보전법을 관할하고 있는 환경부 자체가 부정적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최소하한선으로 대기오염 물질인 일산화탄소와 탄화수소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며 "보완대책 없이 최소하한선제를 없애면 대기질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반박했다.

 환경부는 미국의 경우도 산소함유 최소하한선제는 없앴지만 대안으로 친환경적 자동차 연료인 에탄올 사용량을 2020년까지 360억 갤런으로 확대할 것을 의무화시켰다고 밝혔다.

 정유업계도 휘발유 산소함량 최소하한선 규제 철폐 여부에 따라 휘발유시장이 근본적으로 재편될 수 있어 정부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상범 석유협회 과장은 "국내 휘발유 품질이 세계 최고수준인 상황에서 외국 휘발유를 수입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우려가 많다"면서도 "고유가 국면에서 업계 이기주의로 비쳐질 수 있어 공식 입장 개진은 삼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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