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뱅크, 재벌·금융사 대격돌 예고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08.06.2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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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초읽기

내년 자금시장통합법(자통법) 본격 시행을 눈앞에 두고 시중은행보다 적은 자본으로 은행을 설립할 수 있는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특히 재계에서는 그 수혜대상이 어디가 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있다. 정부가 자본금만 갖췄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설립 허가를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인터넷 전문은행 진출은 설득력이 높아 보인다. 그룹 내 금융계열사를 통해 인터넷은행을 설립할 경우 원활한 자금흐름과 별도의 금융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대기업의 참여가 높을 것이라는 추측이 금융권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뚜렷한 규제 완화나 세부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아 참여 여부를 밝히기 시기상조라는 의견이지만 상황이 가시화 되면 설립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7월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은행법 개정을 확정할 방침이다. 금융위가 TFT(테스크포스팀)를 구성하고 자격요건과 관련법규를 은행업계와 학계 관계자들과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설립 최소자금 기준금액은 기존 시중은행의 최저 자본금인 1000억원보다 낮은 100억~500억원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점포 없는 은행, 인터넷은행 설립기준 가시화

인터넷은행의 최대 강점은 점포설립 비용이 없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만 거래가 되는 데다 설립비용도 시중은행보다 최대 1/10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 적은 자본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인터넷은행은 여ㆍ수신 업무와 지급결제 등 기본 은행 업무를 유지하되 창구가 아닌 온라인이나 자동화기기(CD/ATM) 등을 이용해 운영하는 은행이다. 점포비용이나 창구인력비용 등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낮은 수수료와 고금리 혜택을 통해 소비자의 입맛대로 서비스를 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까지 국내 인터넷뱅킹 가입자는 45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창구를 이용하지 않는 비대면 거래 비중도 80.5%나 차지한다. 이미 인터넷은행 설립의 최적 조건을 갖춘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환영할 만 하다. 금융서비스를 받는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높은 수수료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높은 금리의 예ㆍ적금 상품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인터넷은행과 유사한 상품을 내놓은 곳에서는 고객들의 쏠림현상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대기업 등 참여 눈독...현재까지는 관망 중

인터넷은행 방식에 가장 가까운 상품은 HSBC 다이렉트 저축예금이다. 가입자는 인터넷뱅킹이나 콜뱅킹을 통해 5%의 고금리를 받을 수 있다. 출시 1년 만에 HSBC의 한국지점 전체 개인수신잔액이 2배나 증가했으며 고객수 역시 3배로 늘었다.

현재까지 인터넷 전문은행 진출이 알려진 곳은 산업은행을 비롯한 각 금융권과 금융전문 전산업체다.

산업은행은 취약한 소매수신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인터넷 전문은행 진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산업은행의 현 업무영역은 기업대출과 IB 등 도매대출에 집중돼 있어 민영화 이후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소매수신 준비의 대안으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업계는 산업은행의 높은 인지도로 인해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시 기존 은행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은 외환은행 e비즈니스 담당자를 영입하며 인터넷은행 TFT를 구성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은 고객 DB와 IT투자를 통한 소액신용대출시스템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라인 증권사로 이름 높은 키움증권도 인터넷 전문 증권사의 노하우를 살려 인터넷 전문은행 진출을 공식화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은행수수료의 10% 수준으로 서비스 해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또 대부업체 러시앤캐시도 저축은행 등 타 금융권에서 10%대의 금리로 자금 조달을 하고 있지만 인터넷은행을 설립하면 5%대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고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전문 전산업체들도 인터넷 전문은행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전자어음과 전자세금계산서 취급을 전문으로 하는 스타뱅크는 63만개의 회원사를 바탕으로 사업 추진을 고민하고 있으며 ATM기기 전문업체인 KIBNet도 엄봉성 회장을 필두로 인터넷 전문은행 진출을 가시화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몇몇 대기업도 금융계열사를 이용해 인터넷은행 설립을 고민 중에 있으며 동남아국가의 은행들도 국내 IT업체와 제휴를 통해 논의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동양그룹은 정부의 기준이 마련될 경우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0년 초 동양그룹은 계열사인 동양종금(동양종금증권에 합병)에서 인터넷뱅킹설립단을 운영한 사례가 있다. 당시 유럽의 인터넷은행과 제휴를 통해 국내에 인터넷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상당한 진척을 이뤘으나 금융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아 포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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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위배 등 선결과제 산적

가장 큰 문제점은 금융실명제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계좌를 개설하려면 본인 여부를 확인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점포가 없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게 된다. 관련 업계는 금융실명제법을 수정해 실명 확인을 공인인증서로 대체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경우 명의를 빌려 통장을 개설하는 대포통장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

특히 대포통장은 대부분 사기 등 범죄행위에 쓰일 공산이 크고 또 공인인증서 불법거래라는 새로운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또 낮은 자본금 수준도 중소업체 등 금융부실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금산분리 완화라는 현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자칫 무분별한 인터넷 전문은행의 난립과 기업의 자금세탁용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따라서 일정 수준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을 허가하는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 정부의 특혜사업으로 꼽히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친기업적 마인드를 갖고있는 정부가 그룹 내 자산 관리를 책임질 수 있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허가를 대기업에 할애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계열사를 많이 거느린 대기업 입장에서 금융비용을 타 금융기관에 넘기는 것이 얼마나 뼈아픈 손실인지 생각하면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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