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와 마당극…사상 초유의, 그리고 유쾌한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8.06.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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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촛불집회를 바라보는 한 기자의 고민

한국만의 고유 예술 형태가 있다. 숱한 해외의 예술가와 예술 평론가, 문화연구가들이 감탄했던 창조적인 형식이 있다. 21세기 새로운 예술의 형태를 미리 보여준다는 찬사를 듣기도 한다. 바로 '마당극'이다.

마당극에서 배우와 관객은 호흡을 나눈다. 배우의 목소리와 몸짓, 심지어 숨소리마저 관객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종내 배우와 관객이 뒤섞여 한바탕 춤으로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장소다. 그곳에 참여한 이들은 '즐거운 에너지'를 나눠 갖는다. 집단유희다.



촛불집회는 서울 한복판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로, 그것도 장장 40여일 가까이 진행된 '마당극'이다. 유모차를 타고 나온 아기들이 마냥 신기한 눈빛으로,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쳐다본다.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느껴보겠다며 수업을 마치고 발길을 재촉한다. 말끔한 정장을 입은 회사원은 밤샘 집회를 마친 뒤 피로를 털어내며 일터로 향한다. 계층, 연령, 학력, 사회적 지위 등 장벽을 넘어선 '하나됨' 이다.

마당극의 참맛은 우울하면서도 즐겁고, 유치해 보이면서도 통렬하다는 데 있다. 유희를 갖고 있어 비로소 예술이다. 나타난 모습을 새롭게 재해석해 내는 '반전의 미학'이 담겨 있다. 그래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촛불집회도 마찬가지다. '명박산성'(청와대 진출을 막기 위한 대형 컨테이너 더미를 두고), '시력감퇴, 학습저하'(대형 전등에 맞서), '세탁비'(물대포를 맞으며), '개인기'(앞을 가로막은 전경들에) 등이 그렇다. 긴박한 대치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커다란 웃음을 곳곳에서 터뜨리며 그 상황을 즐겼다.

시민들은 사상 초유의 마당극을 통해 "이곳에서 함께 느끼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 국회, 보수언론을 향해 던지는 참여의 메시지다. 소통하자는 제안이다.

촛불집회는 '무질서 속의 질서', '무언의 합의'를 담고 있어 강력하다.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기도 하고 , 자칫 폭력시위 조짐이 보이면 이를 한사코 만류한다. 새로운 에너지(운동)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이란 제약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운동의 서막일지 모른다. 광활한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진지전'이 아니라 '국지전'을 연중 펼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이번처럼 수십만 명이 한자리에 모 일 것이다. 가능성을 이미 확인했다.

정부, 정치인, 보수언론 등은 촛불집회에 커다란 부담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볼 것인가, 실체가 뭔가,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지만 이들은 "도대체 배후가 누군가"라는 '공허한 미스터리' 에 집착하고 있다.

촛불집회가 '나비효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한 인터넷 카페의 제안 )이 수많은 나비들을 불러 모았고, 다른 대륙에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리다.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대의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촛불집회는 버겁지만 유쾌한 숙제다. 어디서 시작할 지, 어떻게 해야 할 지,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될지 모르는 과제다.

우리는 사상 초유의 사건을 목격하고 있다. 아무도 그 결말을 예단할 수 없고,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한 마당극이다. 주연, 조연, 연출, 무대장식, 작가 등을 모두 한 사람이 맡고 있다. 바로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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