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여의도 정치' 태동하는 '광장정치'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08.06.1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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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용광로로]

대한민국 정치1번지 여의도에 정치가 사라졌다. 정치꾼들이 넘쳐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집안싸움에만 열심인 집권세력은 스스로를 '불통'의 나락에 옭아매고 있다. 여야간 정치도 '소통' 부재로 인해 '먹통'이긴 마찬가지다.

대신 건너편 광화문 시청앞 광장엔 '정치'가 넘실댄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시민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고사리 손에선 촛불이 타오른다. 생활고를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투박한 손바닥에도 어김없이 '먹고살게 해달라'는 피켓이 들려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08일, 18대 국회 개장 후 14일만에 '광장정치'가 '여의도정치'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셈이다.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태동이란 해석이 그래서 나온다.

새 정치에 대한 바람과 기대 속에 닻을 올린 새 정부에서 정작 '정치'가 실종된 이유는 뭘까.



정치 전문가들은 '눈감고 귀막은' 청와대와 정부의 독단적 국정 운영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한다. '고소영·강부자 내각'으로 상징되는 인사 파동과 미국산 쇠고기 졸속협상 파동이 극명한 실례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는 "이명박 정권의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으로 인해 87년의 민주화 운동 성과였던 민주주의 원칙마저 잃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국민들이 갖게 됐다"고 했다. 집권세력의 일방통행에 대한 위기감이 국민들을 직접 광장에 내몰았다는 의미다.

갈등의 해우소 역할을 해야 할 국회의 제기능 상실도 대의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가중시킨 원인이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총선 후 힘겨루기에 몰두한 정치권이 정작 국민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서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을 낳고 소시민들을 움직이게 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쇠고기 촛불시위 과정에서 드러났듯 여당은 정부 논리에 따라가기 급급했다"며 "야당도 국민들이 만들어 놓은 촛불집회의 결과물을 따먹는 데 그치는 등 대안세력의 역할을 다 하지 못 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은 촛불집회 참여 과정에서 국민들의 호응을 거의 얻어내지 못했다. 특히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와중에서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정체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여야 가림없이 정치권 전반에 광범위하게 팽배해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참여민주주의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대의정치의 위기를 그대로 방치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정부와 정당이 역할을 다하지 않을 경우, 아고라(광장)가 형성되는 것은 어느 나라든 민주주의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연구실장은 대의정치의 복원을 위한 방안으로 "청와대와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도 정치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가장 역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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