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귀는 두 개이고 입은 하나인가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2008.06.1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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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배로 듣고 반만 말해야

왜 귀는 두 개이고 입은 하나인가


왜 귀는 두 개이고 입은 하나일까? 또 보고 싶지 않을 때 눈은 감아 버릴 수 있는 반면 왜 귀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듣도록 되어 있는가?

듣고 싶지 않을 때 귀를 닫아 버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서 못마땅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옛날 선비들은 맑은 물에 귀를 씻어 냈다고 하지 않던가.



택시를 탈 경우에 어쩌다가 겪는 일이다. 강제로 들으라는 듯 깡깡 울려 대는 라디오 음악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빨리 도착지에 당도하기만 인내할 뿐이다. 정말 귀를 닫아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닫아 버릴 수 없는 게 천만다행이다.

잠자고 있을 때도 귀는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험한 상황을 듣고 생명을 지킨다. 잠자는 눈은 멍청이다. 코도 제 구실을 발휘하지 못한다. 입도 그렇다. 귀만 생명을 지키느라고 24시간 온갖 소리를 듣고 있다. 귀가 없었다면 벌써 모든 동물들은 세상에서 씨가 말랐을 것이다. 경청의 가치다.
 
◇배로 들으라는 두 개의 귀, 2분의 1만 말하라는 입 한개
 
눈은 왜 두 개일까? 애꾸는 원근을 분간치 못한다. 장·단기 일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눈은 왜 신체 맨 위에 있을까? 멀리 넓게 보라는 것이다. 지도자를 정상이라고 한다. 그것은 산 정상에 올라 멀리 넓게 보라는 뜻이다.



또 깊은 계곡의 낙오자도 보라는 것이다. 제일 잘났으니 정상이라는 뜻이 아니다. 유가와 원자재 폭등 같이 한치 앞조차 내다보지 못한 경제리더십에 모든 국민이 죽어난다. 7·4·7도 얼마나 허망한 구호 인가?

귀도 둘이다. 귀가 둘인 것은 양쪽 말을 모두 들으라는 뜻이다. 한쪽 말만 듣는 우를 범하는 것은 천의(天意)를 거역하는 일이다. 또 침묵하는 다수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쇠고기 재협상’을 원하는 촛불집회에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판이다. 그것을 배후에 유별난 세력이 있다고 의심하는 것은 몸에 좋은 쓴 약을 마다하는 것이다.

콧구멍도 두 개다. 새바람을 넣어 주고 또 부패한 곳을 냄새 맡아 제거토록 한다. 코 스스로 썩지 않아야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강부자’고위직 인선을 비판하는 국민에게 부자가 고위 공직자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변해서는 안 된다.


여러 고위직들이 부의 부정한 형성, 그리고 논문 표절 등으로 낙마하지 않았는가. 인사권력을 전리품처럼 독점하다 보니 시저 등에 칼을 겨누는 브루터스 같은 ‘복심’(腹心)도 나오는 판이다.
 
입은 먹고 마신다. 입은 모든 가치를 먹어서 성장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니 지도자의 입이 부정한 삥땅을 먹어서는 안 된다. 또 말하는 중요한 기능도 있다. 귀, 눈, 콧구멍은 두 개씩인데 입은 하나다. 귀는 2배로 들으라고 2개이고, 말은 한 개의 입으로 말은 2분의 1씩만 하라는 하늘의 뜻 같다.
 
◇지도자는 ‘더 낮은 자세’보다 ‘제일 낮은 자세’로
 
더욱이 지도자는 특히 말을 아껴야 한다. 국민에게 사과의 말씀을 하면서도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 사과하려면 깨끗이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 말보다 경청이다. 리더(Leader)의 첫 자 L은 경청(Listen)의 이니셜이 아닌가. ‘소통’보다 ‘경청’이 앞선다.

“나를 따르라” 보다 “여러분을 따르겠다” 고 하라. 종교계의 원로말씀이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종교계 원로(?)를 만나면서도 ‘재협상은 불가’하다는 의사천명보다 경청하는 모습을 국민은 기대했을 것이다.

지도자는 ‘더 낮은 자세’보다 ‘제일 낮은 자세’여야 한다. “10명의 지도자는 10명의 종이고 만 명의 지도자는 만 명의 종이다.” 한학자이셨던 선친의 교훈이다. 그것은 미국 AT&T의 로버트 그린리프가 주창한 현대적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과도 통하는 사상이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조직도도 역삼각형으로 그려야 된다. 맨 위에 고객이 있고 다음에 종업원 맨 밑에 사장이 위치하는 역삼각형이 현대의 조직도다. 또 현대의 CEO는 도덕적 CEO(Chief Ethics Officer)여야 한다. 그래야 종업원, 주주, 채권자, 소비자, 사회를 만족시킬 수 있다.

대기업의 CEO, 서울시장의 청계천 신화에 이어 대통령 신화를 만들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라. 당장의 먹을거리에 집착해 한반도 대운하같이 문제가 많은 일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과 함께 가는 경청과 겸손의 도덕성이 편안한 성공의 지름길이다.(한국CEO연구포럼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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