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권력, 바뀐 민심 외면 구시대 대응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06.1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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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용광로로]

-미봉책만 남발 '양치기 정부'
-책임지고 나서는 고위인사가 없다
-상처 받은 국민 마음 다독여야

 국민들의 '쇠고기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정부의 권위는 바닥이다. 정부 고위 인사들이 수차례 머리를 조아리며 바닥 민심을 읽지 못한데 대해 사죄했는데도 차가운 민심은 요지부동이다.

 밀릴대로 밀린 정부가 청와대 수석과 장관 일괄 사표란 '극약 처방'까지 동원했지만 지난 10일 촛불시위 참가자 수는 오히려 이전보다 몇 배나 늘었다. 책임있는 당국자가 무슨 말을 해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국가 시스템이 궤멸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천심'(天心)이라는 민심이 정부를 앝잡아보고 우습게 여기게 된 것은 남을 탓할 것 없이 정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데 의견이 일치된다.

 쇠고기 파동 초기부터 국민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권위적인 방식의 '미봉책'만 남발하다보니 국민들은 정부를 다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만 해대는 '양치기 소년' 정도로 바라보게 됐다.



 지난 4월18일 문제의 한미 쇠고기 협상이 '졸속'으로 타결된 뒤 내놓은 정부 대책에 정작 중요한 '광우병'은 빠져 있었다. 농민들이 등을 돌린 '재탕, 삼탕식' 국내 축산농가 지원책만 나열됐다.

 그런 와중에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경고하는 방송을 내보낸 게 기폭제가 되면서 중고생을 중심으로 '넷심'이 요동쳤다.

며칠간 두 손 놓고 방관하던 정부는 지난 5월2일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을 내세워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내용은 "안전하니 그냥 먹어라"는 것이었고 도리어 국민들의 화만 돋우웠다.


 바로 그날부터 한 달 넘게 전국을 들끓게 만든 촛불집회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부는 어린 중고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는 커녕 '광우병 괴담' 유포자를 색출해 처벌하겠다며 '윽박 지르기'로 일관했다.

정부의 오만함을 심판하려는 듯 촛불집회 참가자는 젖먹이를 업고 나온 주부부터 노인, 예비군, 넥타이 부대 등으로 확대됐고 거대한 '저항의 물결'이 서울 도심을 휘몰아쳤다.

 이처럼 민심은 저 멀리 떠나 있는데도 정부는 "믿어달라"고만 외치며 쇠고기 수입 장관 고시를 강행하니 더 큰 화를 자초했다. 결국 장관 고시는 연기됐고 정부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만은 막겠다며 국민들과 미국에 통사정을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 사이 책임있는 당국자들의 대응방식은 '책임 회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작 최종 결정권을 쥔 청와대는 뒤로 숨은 채 힘없는 농식품부 관료들만 TV 앞에 내세워 "할 만큼 했다"고 말하게 했다. 정작 정책의 내용을 물어보면 농식품부 관료들은 "나는 모른다. 청와대가 결정할 일이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김정수 한양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불행히도 정부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며 "정서적 교감이 중요한데 정부는 도구적 합리성만 내세워 돌파하는 방식을 고집해 이 지경까지 왔다"고 진단했다.

 이어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나서 깨끗하게 사과하고 국민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는게 시금 시점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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