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본 세상]촛불 '1만개 vs 19만개'

머니투데이 서동욱 기자 2008.06.0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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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공휴일이 낀 황금연휴 72시간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를 요구하는 수십만개의 촛불로 뜨겁게 타 올랐다. 6일과 7일에는 최대 규모의 '촛불인파'가 광화문 일대를 수 놓았다.

주최측은 시위 참가자를 20만명으로, 경찰은 그보다 훨씬 적은 인원으로 추산했지만 현장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20만을 '근사치'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고시철회' '협상무효' '전면 재협상'에서 '어청수 퇴진' '이명박 아웃' 등 정치적 구호로 변해가고 있다. 6일과 7일 시위에서도 그랬다.

정부의 졸속 협상에 화가 났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분노했으며 배후 논란을 들먹이는 청와대의 안일한 상황 인식에, 참여한 모든 촛불이 뜻을 같이 했다.



자녀들과 함께 시청 광장으로 달려온 가족 참가자들, 같은 색깔 티셔츠를 입고 나온 한 무리의 여중생들, 여드름 고교생들, 동맹휴업을 결의하고 학교를 박차고 나온 대학생들, 유모차 부대 아줌마들, 예비군 아저씨들...이들 모두가 촛불시위의 '배후'였던 것이다.

20만개의 촛불은 차도를 점거한 채 행진을 벌였다.

차도를 점거한 가두행진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수사 당국이 경고했지만, 촛불행렬의 순수성과 정당성은 당국의 경고를 압도하는 힘을 보여줬다.


어떤 집회가 불법인지 여부는 결국 대응 기관의 자의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집회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는 시위 참가자들의 논거는 설득력을 얻는다.

그런데 여기까지였다.

자정을 넘겨서 청와대로 진입하겠다며 경찰과 대치한 1만명의 시위대는 19만 시위 참가자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1만의 촛불이 상황을 더 심각하게 인식한 것일까. 분노의 표현 방식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청와대로 들어가 담판을 지어야만 쇠고기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해서일까.

이들은 밧줄로 전경버스를 끌어내렸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우발적으로 사용된 것이라고도 하고, 경찰이 심어놓은 프락치라는 설도 있지만 쇠파이까지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시민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 현장 곳곳에서도 '비폭력'의 외침이 간간이 나온다. 밤샘 대치를 TV로 지켜보는 시민들도 '이건 아니잖아'라고 반응한다.

포털사이트 '다음' 토론방인 '아고라'에서도 비폭력을 지지하는 의견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촛불집회는 비폭력을 지향합니다'라는 네티즌 청원에 9일 오후 2시30분 현재 3100여명이 서명했다.

이 글은 "촛불집회 참여자이고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시민이지만 갑작스럽게 폭력적으로 변한 촛불집회를 반대하며 전의경들이 폭력적으로 나온다고 집회참여자분들까지 폭력적으로 나오면 그건 진정한 촛불집회가 아니라 우리의 대단하신 대통령님이 원하는 불법시위가 되는 것"이라고 청원 이유를 밝히고 있다.

독재와 비민주에 항거하던 80~90년대의 '투쟁'에서 보듯 '목적을 위한 폭력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당시와 비교할 수 없듯, 경찰 버스를 밧줄로 끌어내는 시위대에게 박수를 보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1만여 촛불 시위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요구가 얼만큼의 정당성을 갖는지, 나머지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지지를 어느정도나 얻을 수 있는지, 자신들로 인해 '촛불'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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