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박영준, 왜 갈라섰나

머니투데이 이새누리 기자 2008.06.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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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 내 권력다툼 수면위로
-지난 조각과정에서부터 시작

↑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왼쪽)과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왼쪽)과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때아닌 여권 내 권력 갈등의 두 축에 선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재선)과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1급).

거침없는 폭로와 물러서지 않는 반박, 두 사람의 공방은 치열하다. 두 사람은 한 때 둘도 없는 파트너로 불렸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권 창출 이후 둘 사이는 점점 벌어졌다.



이들의 인연은 2002년부터 시작됐다. 박 비서관은 서울시장 선거가 치러졌던 당시 비서실 부실장이었고 정 의원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영입돼 처음 만났다.

박 비서관은 이미 서울시에서 이 대통령을 보좌하기 전부터 이 대통령의 큰형인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을 10년 넘게 해온 인물. 이 때문인지 박 비서관은 이상득 사람, 정 의원은 이명박 사람으로 흔히 분류되곤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라는 일념 하에 한몸으로 움직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캠프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안국포럼에서는 물론, 불과 1년 전인 경선과 본선에도 힘을 합쳤다. 정 의원의 정무·기획력과 박 비서관의 우직함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도 받았다.

정권 인수 작업에서도 둘은 함께 했다. 정 의원은 당선인 '보좌역' 역할로, 박 비서관은 '총괄팀장' 역할로 당선인 비서실에 들어가 정권의 밑그림을 그렸다.

정 의원은 '리베로'처럼 여러 일을 다뤘고 박 비서관은 인사를 비롯 실무를 총괄했다. 이 대통령의 신임이 그만큼 두터웠다는 의미다. 당시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았던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함께 이들은 '실세 3인방'으로 불렸을 정도.


그러나 그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권력이 집중되는 바로 그 때, 갈등이 시작된 셈이다. 시점은 지난 1월과 2월 이명박 정부의 초기 조각 과정 때로 올라간다.

정 의원과 박 비서관 모두 새 정부 인사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박 비서관 쪽으로 힘이 실렸다. "5000여 명의 인사 파일을 보고 작업했다"고 말할 만큼 적극적으로 현 정부의 조각 작업에 참여했다.

반면 정 의원은 인사 실무 작업에서 배제됐다.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게다가 청와대 주요 회의 결과는 박 비서관에 의해 최종적으로 취합,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대통령의 신임은 더 두터워졌다.

'친이' 세력 내 권력싸움은 사실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지난 공천 과정에서는 '정 의원+당내 소장파'과 '이상득 의원+청와대 일부 참모'간 권력다툼 '1라운드'가 있었다.

소위 '개혁파'로 지칭되는 정 의원과 소장파 의원들 55명은 이 의원의 공천 반납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꾸준히 청와대 정무라인 개편을 요구해오기도 했다.

한편 여권 일부에서는 전부터 정 의원이 지목한 '청와대 3인방' 중 한명인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실무라인과 대통령 간 소통기능을 막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계속 제기돼 왔었다. 류 실장은 지난 6일 사의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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