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고환율, 고통스럽지만 기회다

이상진 신영투신 부사장 2008.06.0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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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 서자 사방에서 비명이 들린다. 고 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운송업체와 석유화학업체는 말 할 것도 없고 차로 출퇴근 해야 하는 평범한 샐러리맨들도 당장 고통스럽다. 어부들은 면세 받는 기름을 사용해도 조업비를 감당 못해 배를 항구에 묶고 있고 트럭 한 대로 겨우 밥 먹고 사는 자영 운송업자들은 살 길이 막막하다. 여기에 환율마저 올라 경쟁국에 비해 체감 고통이 더 심하다.

와중에 이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묘수가 없다는 것과 언제 상황이 개선될 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미래가 더욱 암담하게 보인다. 과연 일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물가는 오르고 경제 성장은 떨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낙관론자들의 주장대로 하반기 끝 무렵이면 최악의 터널을 벗어나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회복이 가능할까? 우선 유가 문제부터 살펴보자.



7년 전 배럴당 25달러 하던 유가가 6년 뒤인 작년 초 60달러까지 상승한 것은 개도국의 원유 수요 증가에 따른 수급 불균형 탓이라고 일단 인정하자. 그러나 1년 사이 무려 100%나 폭등해 130 달러를 돌파한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 사이 중국의 원유 수요가 따따불(?)로 늘어난 것도 아니요 사우디가 원유 수출을 중단한 것도 아니다. 일부 달러화 약세 현상도 기여했겠지만 지난 1년 간 달러화는 주요 통화에 대해 20% 내외 절하되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이는 아슬아슬한 석유 수급에 대한 잠재적인 불안심리와 투기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불과 1년 전 사우디 석유장관은 배럴당 60 달러만 유지되었으면 한다는 간절한(?) 희망을 토로했다. 또 얼마 전 부시의 증산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투기꾼들이나 단속하라고 일갈했다.



최악의 경우 OECD국가들이 비축하고 있는 33억 배럴의 10%만 풀어도 유가는 급전직하 추락하게 되어 있다. 한편 지난 35년을 돌이켜 보면 오일 쇼크가 올 때 마다 세계 경제는 더 한층 효율성을 증대시켜 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두 번째 환율 절하 문제다. 일부 중소기업들이 환율 파생상품에 가입했다가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 난다고 난리다.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경제 수장이 은행들을 "S" 기꾼으로 몰아 세웠을까? 수출업체를 살리기 위한 인위적인 환율 절하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PPP(구매자 환율)로 비교해 보면 원화가 우리 실력에 비해 과도하게 절상된 것은 사실이다.

이번 절하 추세가 어디까지 갈 지 모르지만 당분간 최소한 달러 당 천 원 이상이 맞다. 환율 절하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문제지만 에너지와 식량 값을 제외한 소위 코어 인플레이션은 아직 2%대다.


반면 원유나 원자재를 수출하는 많은 개도국들은 이번 가격 폭등 사태로 그야말로 떼 돈을 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의 수출 시장이 그만큼 확대 되었다. 먹고 살만 하니 우리나라가 주로 잘 만드는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가히 폭발적이다.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면 원자재 사온다고 지불한 돈을 고부가 가치 제품을 팔아 이자까지 부쳐 받아 올 수 있다. 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환율까지 도와주니 조금 과장하면 빈 집에 소 들어오는 격이다.

세상만사 모든 일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에너지 효율성이 일본의 40% 밖에 되지 않는 한국에서 생수보다 싸게 기름을 쓸 수 없는 노릇이다. 이번 사태로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탈 석유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그만큼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아닌 말로 언젠가 닥칠 참사를 미리 막아 주었다는 면에서 시장의 경고가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한편 환 관련 상품에 가입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본 기업들도 환율의 움직임이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금융 상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이다. 이 또한 미래의 기업 재무 전략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잊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시장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데 주가가 1800포인트를 유지해 주고 있음은 일단 희망이 있다. 모든 것은 투자 기간 즉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연말만 바라 본다면 지금 펀드를 해지해도 될 것 같고 최소한 내년 말까지 보겠다면 지금 가입해도 결코 비싼 주가가 아니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지난 1년 동안 우리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일들보다 더 참담한 일이 되풀이 될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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