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추억이 상영된다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2008.06.0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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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일과꿈]김은주 허리우드클래식 대표

그곳에 가면 추억이 상영된다


"올 여름 '영웅본색'을 상영할 때는 바바리를 입고 성냥개비를 물고 오시는 분은 무료로 입장시킬 생각이에요. 더운 날씨에 그 정도의 열의라면 자격이 있지 않겠어요?"

대형 흥행작을 서로 상영하려고 영화관들이 아우성 치는 요즘에 오래 전 개봉했던 영화에 푹 빠져 지내는 별난 영화관 사장이 있다. 최신 영화엔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김은주(34·사진) 허리우드클래식 대표 얘기다.



빛이 바랬던 서대문 드림시네마와 인사동 허리우드 극장을 클래식 영화 전용관으로 변신시킨 그는 영화 티켓에 추억을 얹어서 판다.

"같은 영화라도 나이를 먹고 시대가 변한 후 다시 보면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지요. 저는 새로운 감동을 주면서 추억이라는 코드를 접목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는 옛 영화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디지털 기기로 극대화하려고 했다.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장' 영화관을 맡자마자 스크린과 음향부터 보수했다. 과거 영화일지라도 노후된 시설에서 보는 것은 감동을 저해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드림시네마는 이렇게 재탄생했다. 지난해 11월 '더티 댄싱'을 상영하면서 고전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단관 규모로는 4000명의 관객만 들어도 많은 편인데 이례적으로 1만7000명이나 다녀갔다.

멀티플렉스 영화관과는 비교가 안되는 규모. 하지만 그에게 소박한 성공이었다. "더티 댄싱을 개봉하던 날은 시끌벅적 김장하는 날 같았어요. 영화만 보러 오시는게 아니라 사진도 찍고 옛날 이야기로 한두시간은 웃다가 가시더라고요."


연애시절 함께 본 영화라며 애들 재워놓고 지방에서 올라온 부부도 있었다. 관객들은 돈을 내고 왔으면서도 좋은 영화를 상영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에겐 가장 큰 보람이고 행복인 순간이었다.

그는 관객의 호응이 있는 한 클래식 영화관을 계속 운영할 방침이다. "처음엔 '한번하고 말겠지' 하시던 분들도 '벤허''미션'이 줄지어 상영하니까 문의를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저희에게 '이 영화는 꼭 보여달라'고 요청하시죠. 그래서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몇편 더 골라서 지방투어도 해보려고 합니다."
그는 한국 영화산업에서 클래식 영화관을 제대로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꿈이다.



"요즘엔 컴퓨터로 영화를 다운받아 보거나 홈씨어터 시설을 잘 갖추고 있어서 극장에 가는 즐거움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역시 극장에서 보는게 제맛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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