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은 세계 버블붕괴의 서막"

대담=정희경 금융부장·정리=임동욱· 사진=임성균 기자 2008.06.0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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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버블붕괴 생생히 체험… 현재 상황과 너무 흡사해
베트남 불안, 중국도 문제… 앞으로 여러번 위기 올것
조금 늦었지만 메가뱅크 필요… 정부가 킬 터줘야


"전세계적인 버블 붕괴 국면에 진입했습니다." 이철휘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사진)은 최근 글로벌 신용경색을 야기한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는 경제위기의 '서막'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주일대사관 재경관 등을 맡으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생생히 목격한 그는 미국경제가 처한 상황이 당시 일본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점을 한 근거로 제시했다.

'비관론자'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 그는 세계경제가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큰 만큼 적극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때 캠코가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국내 대표적 '일본통'으로 꼽히는 이 사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서브프라임은 세계 버블붕괴의 서막"


―최근 재신임을 받으셨는데 축하드립니다.
▶영광입니다. 다만 이번에 재신임을 받지 못한 분들을 '디스퀄리피케이션'(Disqualification·자격상실)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이 분들은 청렴하고 애국심이 강합니다. 이 대목을 높이 사야 할 상황이 오면 역할을 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료를 그만두신 소감은.
▶'민간'에 가까운 자리로 나와보니 더욱 민간 쪽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역시 민간이 활력이 있습니다.

―외환위기 후 10년이 지났습니다. 캠코의 역할도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부실채권(NPL) 처리만 놓고 보면 줄어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캠코의 주된 역할은 단순히 NPL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시장실패를 1차적으로 수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신용회복과 기업 재생 프로그램, 금융기관의 NPL도 그 대상입니다. 또한 유휴부동산, 조세체납, 결손처분자산 등 정부의 시장실패 부분도 캠코의 몫입니다. 캠코가 '세이프티넷'(Satety Net·안전망)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분양 아파트 처리도 포함됩니까.
▶네, 미분양 아파트 해결에도 나설 계획입니다. 정부가 직접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캠코의 일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해외에서는 캠코 같은 기관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미국도 유사한 기관을 만들 겁니다. 캠코의 브랜드 가치도 높아졌습니다. 해외 진출 때 캠코가 '마켓메이킹'(시장조성)에 나서 국내 금융기관에 길을 터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시중은행에서 해외 동반 진출 제의를 해와 양해각서(MOU) 체결 단계까지 와 있습니다.

―정부가 공기업의 경영효율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캠코가 '가장 민간화된 공기업'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공기업도 '이익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력을 20∼30%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능력이 부족한 직원이 5% 정도는 있겠지만 직무재조정 등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람값이 가장 싸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금융시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서브프라임은 세계 버블붕괴의 서막"
▶금융권에서 제가 가장 비관론자일 겁니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일본의 버블 붕괴 과정을 저만큼 생생히 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 과정이 현재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현재의 위기는 미국의 부동산 버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기본적으로 버블 붕괴 과정의 작은 발현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많은 위기가 오게 될 겁니다.

―고유가 등의 여파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미국의 버블은 유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붕괴 과정이 오히려 늦춰지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 버블 붕괴가 막 시작됐을 때 물가가 올랐고, 앞서 미국 대공황 초기에도 인플레이션이 나타났습니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에는 투기적 요인도 있어 폭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때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은 미국의 버블과 금융시장 붕괴에 따른 파장입니다. 경제위기에 대비해야 할 시점입니다.

―비관론이 더욱 굳어지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미국 주택가격이 관건입니다. 지난 3월 미국 주택가격 통계를 보면 가격 하락 속도가 유의해야 할 수준에 왔습니니다. 미국의 금융기관들도 지금까지 나타난 1파보다 앞으로 올 2파, 3파를 크게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캠코도 미국 NPL시장 진출을 늦춰야 하는 게 아닙니까.
▶네 우리도 그 시기를 늦춰잡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바닥이 언제쯤 보일까요.
▶이제 막 시작단계여서 예측이 어렵습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대응을 보면 과거 일본 정부의 정책과 판에 박은 듯 똑같습니다. 신용경색을 막기 위한 금리인하 조치의 부작용이 심각할 겁니다.

―다른 시장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위험요인이 '현재화' 됐는지 여부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요인들은 경제가 어려워진 후 드러나 '패닉'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감이 좋지 않은 곳은 베트남시장입니다. 베트남에 이상이 발생하면 불이 중국으로 옮겨붙을 수 있습니다. 중국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동유럽, 호주, 뉴질랜드의 부동산 가격 하락 폭도 정상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전세계적인 버블 붕괴 과정에 들어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일본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 98년 초 일본 주요 은행들은 해외차입을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 세계 2위 규모의 도쿄미쓰비시은행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유일하게 해외차입이 가능했던 이 은행이 다른 은행들에 외화를 조달해줬습니다. 국내에서 제기된 '메가뱅크'는 사실 위기 때 필요합니다. 거대화의 폐해도 있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 파이낸싱이 가능한 은행을 키워내느냐가 관건입니다. 좀 늦었다고 봅니다.

―메가뱅크론을 놓고 시각이 제각각인 것같습니다.
▶사실 '메가벵크'라는 용어는 국내에서 제가 가장 먼저 꺼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메가뱅크론이 힘을 얻으려면 민간부문에서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국내 민간 은행들은 소위 '오너 없는 오너 체제'가 돼 있어 못 움직입니다. 그 부분을 정부가 뚫어줬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민간은행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으로 합쳤습니다. 우리는 현 상황에서 이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오너 없는 은행의 오너'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뜻인가요.
▶정부가 힘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가 이를 유도하되 길을 뚫어줘야 합니다. 지분율 기준으로 오너도 아닌 경영자가 오너처럼 수십년씩 은행을 지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환위기가 또 오겠느냐는 낙관론도 많습니다만.
▶그런 위기는 오지 않더라도 제법 아픈 위기는 자주 올 것입니다. 불과 몇달 전만해도 외화조달을 놓고 은행들이 얼마나 마음을 졸였습니까. 금융시스템은 국가의 생명이자 핏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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