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물가, 경제 초비상

여한구.이학렬.임대환 기자 2008.06.0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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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뒷전 물가관리 급선무… 성장률도 하향 조정할 듯

물가가 수직 상승을 거듭하면서 한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5월 물가는 4.9%나 뛰어올랐다. 지난 2001년 6월(5.0%)이후 6년11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5%가 바로 코앞으로 '슈퍼 인플레이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했다. 물가상승률도 3.6%(2월)→3.9%(3월)→4.1%(3월)→4.9%로 상승추세가 이어졌다.

물가 급상승의 주요 원인인 역시 '고유가'다. 경유 대란을 불러온 경유(40.7%)를 비롯해 등유(46.4%), LPG(자동차용 22.9%, 취사용 28.1%), 휘발유(16.3%) 등 석유 관련 품목이 물가를 하늘높은 줄 모르고 끌어올리고 있다. 이미 정부의 물가 목표치(3.5%)는 달성은 옛말이 돼버렸다.



이 같은 물가 급등은 곧바로 소비 축소로 이어져 내수와 경제성장을 압박하는 '암'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1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분기 대비 1.2%가 감소했다. 1분기 GNI는 2003년 1분기 -1.6% 이후 최대로 감소한 것이다. 국가경제 외형은 커졌지만 실제 가정 살림살이는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는 의미다.



임금 및 소득이 물가인상률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실질 소득이 마이너스가 됐다고 아우성이다. 당장 직장인들은 평소 타고다니던 자가용을 집에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고, 주부들은 장바구니 무게와 외식횟수를 줄이는 등 소비지출 감소에 나섰다.

이미 4월 소비재 판매액은 전달에 비해 0.2% 감소하는 등 내수 침체 기미가 뚜렷하다. 향후 경기 국면을 예고하는 경기 선행지수는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 연속 하락했고, 현재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도 3개월째 내림세를 지속했다.

현재와 같이 휘발유와 경유가 리터당 1900원을 넘는 이상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물가가 억제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하반기다. 정부는 상반기에 동결했던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을 더이상 묶어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원유 등 연료비가 폭등해 하반기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전기와 가스요금 등이 인상되면 철도, 고속버스, 지하철, 시내버스 등도 덩달아 오를 가능성이 커 물가상승을 더 재촉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성장'을 외쳐온 정부도 이런 여건에서 당분간은 물가관리에 역량을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수출길을 넓히기 위해서는 고환율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잠시 접고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환율을 주저 앉혔다.

최중경 재정부 제1차관은 "현재 환율정책은 원자재값 급등에 따른 서민생활 어려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정부 스탠스 변화를 분명히 했다.

강만수 장관이 "일자리를 잃는 게 좋으냐, 물가가 조금 오르는게 좋으냐"고 언급하는 등 일정부분의 물가상승은 감내해야한다는 철학을 견지했지만 최근 물가 급상승은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재정부는 6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물가를 부추길 수 있는 금리 인하 요구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중경 차관도 금통위에 금리인하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열석 발언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금리는 지난해 8월 이후 10개월째 동결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성장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건 정부는 하반기에는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내릴 것임을 예고해 놓고 있다. 임종룡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하반기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선공약이었던 7% 성장은 접은지 오래고, 올해 성장률 목표치로 6%를 수정한 바 있다. 이보다 더 내리겠다는 의미다.

민간연구소의 전망은 이미 5% 이하로 내려갔다.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0%에서 각각 4.7%, 4.9%로 내려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4.8%로 하향조정했다. 금융연구원의 전망치는 이보다 낮은 4.5%다.

이와 관련,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하강국면에 있기 때문에 정부가 성장정책을 쓴다고 해도 경제가 살아나기는 힘들다"면서 "당분간은 물가관리 위주로 정책을 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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