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시대 'A씨가 뿔났다'

김지민 기자, 정현수 기자 2008.06.0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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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시대를 살아가는 A씨의 하루

# 오전 7시. 5년차 직장인 A모씨(33·광명시 거주)의 출근길은 전쟁터다. 만원 지하철에 셔츠가 땀으로 뒤범벅 되기 일쑤. 집에 고이 모셔둔 자동차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기름값 생각에 마음을 다잡는다.

자신의 승용차로 서울 직장을 출퇴근하는 그의 한달 차량 유지비는 40만원 정도. 하지만 최근에는 50만원대를 훌쩍 넘었다.



주유소 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1일 휘발유 평균 가격이 처음으로 ℓ당 1900원선을 넘어섰다. 지난 1월 첫째 주에는 1636원이었으니 올해 들어서만 16.13% 상승. 그가 만원 지하철에 몸을 맡기는 이유다.

서울 시내 한 주유소 관계자는 "치솟은 기름값 때문에 운전자들에게 괜히 미안해진다"며 "주유소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 낮 12시. 점심시간 길거리로 나선 A씨의 발걸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 줄줄이 오른 음식값에 음식점 문을 열기가 두렵다. 싼 값에 즐겨먹던 자장면 등의 음식가격도 만만치 않게 올랐다. 자장면도 최근 크게 올라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다.

A씨는 아내에게 도시락을 싸 달라고 부탁하려 했으나 곧 마음을 접었다. 대형마트에 다녀온 아내의 푸념이 만만치 않아서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가격자료에 따르면 삼겹살 가격이 지난주에 비해 12.6%나 올랐다. 목살도 17.7% 올랐다. 설탕, 조미료, 식용유 등 생필품 가격도 치솟기는 마찬가지. 그는 조심스레 분식집 문을 열었다.

# 오후 3시. A씨는 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작년부터 계획해왔던 여름 휴가를 취소하기 위해서다. 아내와 3살된 아이와 함께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들떠있던 그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여행을 취소하기로 마음 먹었다.


교통비와 먹거리 비용 등 생활비가 줄줄이 오른데 이어 유류할증료 마저 올랐기 때문이다. 유류할증료 인상분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상승세를 보이던 유류할증료는 지난 5월에만 유럽·미주·호주 왕복노선의 경우 36달러, 중국·동남아 16달러, 일본은 8달러 인상됐다. 물가가 높아진데 따른 값비싼 여행경비도 A씨에게 다소 부담스런 금액이 아닐 수 없다.

L여행사는 "유가 인상으로 예약 취소율이 뚜렷하게 증가한 것은 아니지만 예약율은 작년보다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밤 12시. A씨는 직장동료와 오랜만에 술 한잔을 기울였다. 한순배 두순배 돌기 시작한 술자리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지하철과 버스가 끊긴 시간, 택시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A씨는 택시를 잡았다.

개인택시 운전기사는 "요즘 기름값 때문에 밥벌이가 안된다"며 넋두리를 늘어놨다.
그는 "기름값이 우리 수입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데 거기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하루꼬박 운전대를 잡아도 손에 쥐는 것은 5만원도 안 되는 날이 많다"며 긴 한숨을 쏟아냈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유류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택시기사들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영업일이 한 달에 20일로 정해져있어서 더 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택시연합회는 지난 주 임원 및 실무자 회의를 거쳐 정유회사 측에 기름값 상승과 관련한 의견을 전달한 상태다.

라디오로 뉴스가 흘러나왔다. 직장에 들어온 이후 수년만에 듣는 내용이다.

"정부는 고유가 등 치솟는 물가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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