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공무원 사회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06.0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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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머슴론·조기출근·강제퇴출..'쥐어짜기 개혁'

-MB, 연이은 '공무원 때리기'
-TF 해체..'통곡의 버스' 타고 교육행
-무사안일 없어졌지만 보신주의·복지부동 극심

 "새 정부 집권 후 유일하게 하고 있는 일이 공무원 팔목 비틀기 아닙니까."(경제부처 A국장)



 "영혼이 없는 머슴한테 무얼 바랍니까."(사회부처 B과장)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 공직사회에는 냉소 섞인 자조가 가득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강도 높은 비판으로 공무원들을 코너로 몰아세워 왔다.



새 정부의 '공무원 때리기'는 정부 출범 전부터 시작됐다. 지난 1월, 지금은 사라진 국정홍보처의 대통령직인수위 업무보고. 국정홍보처 한 간부는 인수위원들의 질책에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토로했다. 공무원이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쩔 수 있었겠냐는 고백이었다.

 새 정부 출범 후 지난 3월10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는 이 대통령이 '머슴론'으로 공직사회를 경직시켰다. 이 대통령은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서번트(servant), 쉽게 말해 머슴인데 말은 머슴이라고 하면서 국민에게 머슴 역할을 제대로 했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직사회의 무사안일, 복지부동을 꼬집은 '머슴론'은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지만 공무원들은 의욕을 잃고 눈치보기에 급급하게 됐다. 당장 이 대통령을 따라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얼리버드'(Early Bird)족이 양산됐고 무조건적인 조기출근의 부작용을 지칭하는 '어리버리 증후군'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공무원이 '철밥통'이란 말도 이젠 맞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25일 "재정부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조직개편으로 발생한 잉여인력을 한방에 모아놓는데 이런 편법적 관리는 안된다"며 "그러니까 '모피아'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호통쳤다. 더 나아가 "잉여인력을 놀리지 말고 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하라"고 방법까지 제시했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 직후 재정부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부처의 TF가 일거에 해체됐다. 졸지에 무보직이 된 간부급 공무원 205명은 중앙공무원교육원에 보내져 재교육을 받아야 했고 교육원으로 가는 버스는 '통곡의 버스'라 불렸다.

 재교육을 거쳐 성적이 우수한 공무원은 다시 기용한다고 하지만 그 수는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무원들의 '강제 퇴출' 코스로 여겨지는 재교육을 통한 인원 정리는 조만간 5급 이하 공무원에까지 적용될 전망이다.

'통곡의 버스'에 타야 하는 하위직 공무원 수는 1500명 선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모두 3400여명의 공무원을 감축할 방침이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공무원들을 '들들 볶는' 이유는 오랜 기간 기업활동을 하면서관료에 대한 반감이 쌓여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업인 입장에서 관료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법 규정을 내세워 사사건건 간섭하고 인허가권을 무기로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인식돼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청와대가 공공기관장 인선에서 관료 출신은 최대한 배제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 정부의 이런 입장에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고 있다. 관료조직을 최대한 멀리 하려는 이 대통령의 등장으로 공무원들이 경각심을 갖게 되면서 공직사회 특유의 느슨함과 안일함이 예전에 비해 많이 사라진 것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꼽힌다.

 기획재정부의 모 간부는 "어떻게 일을 하든지 버티고만 있으면 정년까지 간다는 인식은 확실히 깨졌다"며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전보다 더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위로부터의 '쥐어짜기' 식 공직 개혁의 한계가 조기에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비등하다. 현실에 대한 충분한 진단과 대책마련 없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직개혁 프로그램이 급조되는 경향이 너무 잦다는 불만이다.

이러다보니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식의 보신주의와 복지부동 마인드가 오히려 더 확산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공직사회에 예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위기감과 긴장감이 주입됐다는 점이다. 이런 공직사회 변화가 국가와 국민생활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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