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는 비결에 대해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2008.05.2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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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배부른 종업원보다 배고픈 주인이 낫다"

부자가 되는 비결에 대해


부자가 되는 길, 부도(富道) 1단은 근(勤), 2단은 검(儉)이다. 부도 3단은 축(蓄)이다. 쌓는 일이 중요하다. 우선 쓰지 않고 지키고 불려야 한다.
 
1930년 세계 대공황에 직면하면서 J.M. 케인즈는 혜성과 같이 등장한 경제학자였다. 그는 주식투자에도 능통해서 돈은 크게 벌었다.

그러나 말년에 가서 주식 투자가 실패했다. 돈을 지키지 못했다.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경제학자들이 이론에는 정통하지만 현실감각은 없기 때문인 모양이다.



조선 중기 '어우야담'에 나오는 충주의 고비이야기다. 자린고비로 불리는 이가 바로 그다. 동네 사람 하나가 부자되는 비결을 알려 달라 그에게 간곡히 청했다. 고비는 흠쾌히 응했다. 그들은 성 위쪽에서 만나기로 했다. 산위에서 자란 소나무 한 가지가 성 밖으로 뻗어 있었고 그 아래는 절벽이었다.
 
고비는 동네사람에게 그 가지에 매달리라고 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에 그 말대로 했다.
"이제 한 손을 놓으시오."
"예?"
그 사람은 하는 수 없이 고비의 말대로 따라 하기는 했다.

그러나 떨어지면 곧바로 저승행일 듯하여 바짝바짝 목이 탔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 쪽 팔에 온 힘을 다해 나뭇가지를 쥐고 있었다. 드디어 고비가 한마디 했다. "그 한 손으로 소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 것처럼 당신 재물을 잡고 있으면 되오." 재물을 지켜야 한다는 비결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케 해주었던 것이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고 쌓는 것이 더 중요
 
조선 후기 '청구야담'에 있는 상주지방 김씨 부부 이야기다. 결혼 초에 그들은 동침하여 아이가 생기면 돈을 벌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년을 따로 각기 자면서 열심히 일했다. 10년을 쌓으니 어느덧 부자가 되어 있었다.
 
한국인들은 빚 무서운 줄 모르는 것 같다. 대기업들이 한 때 달러를 들여와서 돈장사하며 흥청댔다. 그러다가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또 신용카드 사태로 온 국민이 카드대출로 돈을 헤프게 쓰더니 한동안 빚내서 집사는 게 유행이 됐다.

이러는 동안 가계빚이 580조에 이른다고 하니 가구당 3640만원 꼴이다. 2007년도 GDP중 68.6%가 가계빚이다. 나라의 빚도 2007년 말 282조에 이른다. 강대국 미국도 쌍둥이 적자로 허덕인다.

세계적 부자인 워런 버핏조차 미국인을 '낭비마을 사람들'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경제거품을 품은 채 대지진을 맞은 중국의 경제도 심상찮다. 유가와 원자재값이 하루가 멀다하고 폭등하고 있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이럴 때일수록 나라나 개인이나 돈을 잘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부도 4단은 업(業)이다. 최고의 투자는 창업이다. '기업의 별'이라고 할 수 있는 임원이 되면 신세가 한층 좋아진다. S그룹의 경우다. 신임상무가 되면 부장 때보다 연봉 2배를 비롯하여 50가지가 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임원이 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유지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업(業)을 하는 경우에도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닌가. 중국의 원저우(溫州)사람들은 '중국의 유태인'이자 '중국의 개성상인'들이다. `배부른 종업원보다는 배고픈 주인이 낫다'는 게 그들의 뼛속 깊이 새겨진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원저우의 실천적 모험가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남의 회사에 들어가 높은 지위에서 일하는 것보다 노점상일지라도 주인이 되는 쪽을 택한다. 주인이 되었을 때의 가장 중요한 점은 정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상하이 남부에 산을 등지고 바다를 마주한 지리적 환경이 원저 인들에게 개방과 모험의 정신을 갖게 했다." 전 중국국가 주석 장쩌민의 찬탄이다.

결코 지칠 줄 모르는 삶의 태도와 실리를 추구하는 그들의 성취력은 중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최대나 최고가 아닌 시장의 최적주의'를 내세우며 무서운 속도로 세계의 상권을 석권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원저우의 실천적 모험가들에게 감사해야한다." 거인 덩샤오핑은 아낌없이 그들을 칭송했다.

얼마 전 한국 디지털 벤처의 리더인 안철수 연구소이사회 의장이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3년 만에 KAIST 석좌교수로 돌아왔다. 조금쯤 실망했다. 그의 말처럼 젊은이들의 창업 정신이 고갈된 요즘 '안전한'교수로서보다 깊이 쌓은 내공을 토대로 또 다른 창업과 멋진 도전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한국CEO연구포럼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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