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CEO 인선 갈지자 '소 걸음'

여한구.양영권 기자 2008.06.0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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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은 많은데 인재풀은 협소

-공모자는 많아도 적임자는 적어
-'강부자', '고소영' 등 기용 고심
-과도한 청와대 관여도 속도 저하 요인

산업은행, 우리금융 등 금융공기업을 중심으로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만 속도는 매우 더디다.

전체 305개 공공기관 중 240여개의 수장이 무더기로 교체되는데 따른 '체증' 현상이 감지되는데다 갑작스럽게 240여명의 CEO를 찾으려니 '구인난'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모하는 사람은 많아도 흠이 없고 실력을 갖춘 인사가 많지 않아 결국엔 '빈 자리' 채워넣기에 급급하게 되거나 CEO 선임이 무한정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흥행은 성공했는데…'=부처별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공공기관장 공모는 일단 '흥행'에는 성공하는 듯한 분위기다.



새 정부가 공공기관장 연봉을 차관급 수준(1억800만원)으로 대폭 삭감한데다 '계약경영제' 도입으로 사실상 신분이 보장되지 않음에도 지원자가 웬만하면 10명은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8일 마감된 한국투자공사(KIC)의 사장 공모에는 모두 30명이 응모했다.

선임 절차는 기관별로 구성된 임원추천위가 공모 지원자 중에서 3명을 골라 상급 부처 장관에게 보고하면 장관이 이를 2명으로 줄여 청와대에 올리는 방식이다. 최종 낙점은 청와대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되는 것은 지원자 숫자가 아니라 지원자들의 실력이다. 능력과 전문성, 공공기관 개혁의 의지 등을 두루 갖춘 적임자를 찾기가 생각보다 힘들어 인선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모 공단의 관계자는 "예전에는 공모라고 해도 정권 차원에서 힘이 쏠린 인물이 부각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어 검증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주택금융공사 사장 공모가 대표적인 사례. 임원추천위에서 22명이나 되는 지원자 중에서 3명을 금융위원회에 추천했지만 청와대까지는 올라가지도 못했다. 금융위가 "적임자가 없다"고 퇴짜를 놓아 재공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

◇'고소영'도 '강부자'도 부담돼=공공기관장 후속인사가 진통을 겪는 것은 능력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도 재산이 너무 많거나 재산 형성 과정에 문제가 있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 때문에 몇 차례 인사 파동을 겪은 터라 재산 형성 과정에서 흠집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있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공을 세웠지만 지난 4월 총선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탈락한 '공신'들을 배치하는 것도 '낙하산' 시비를 부를 수 있어 선뜻 추천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가 민감해하는 '고소영'과 '강부자'를 제외하고 나면 마땅한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관료 출신도 청와대에서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인선의 폭이 무척 좁다"고 토로했다.

◇"청와대에 물어봐"=부처의 재량권이 축소된 것도 인선을 늦어지게 만들고 있다. 청와대가 전체 공공기관장 후속인사에 사실상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모든 부처들이 '위만 바라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모 사회부처 공무원은 "부처 장관이 소신 있게 산하기관장을 추천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면서 인사에 있어서 청와대의 눈치를 더 볼 수 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후속 기관장 인사가 지연되면서 업무공백도 장기화되고 있다. 현재의 진도로 봐서는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빨라도 다음달 중순은 지나야 새로운 CEO를 맞을 것으로 전망돼 단순한 일상 업무만 진행하는 현 상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 산하기관의 한 임원은 "지금 같은 여건에서 누가 총대를 메고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며 "감원설이 공공연히 떠도는 등 회사 분위기도 어수선해 사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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