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맞는 ECB '물가관리 가면극'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2008.05.2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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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물가목표 8년째 달성 실패… 그래도 수정없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다음달 1일부로 출범 10주년을 맞는다.
유럽 경제권의 중앙은행으로서, 그간 ECB는 많은 역할을 했다. 태어날 때부터 ECB는 성장보다는 인플레이션을 우선 과제로 삼는 경향을 보였다. 여건이 서로다른 국가들의 경제 성장을 관리하기보다 이지역 물가를 잡는데 더 많은 애를 써온 것이다.

유로 국가들도 '성장은 자신들이 알아서 할테니 물가는 ECB가 신경을 써달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CB는 최근 8년 연속 물가를 2%이내로 안정시킨다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모간스탠리 런던 지사의 조아킴 펠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ECB가 픽션(허구)을 고수하고 있다"며 "성장과 물가의 관계(조건)가 실질적으로 변했다. ECB는 목표를 수정해서 변화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물가 2%라는 목표가 △유로화를 채택한 동유럽국가들의 높은 성장성 △유럽 경제권의 생산 비용부담 증가 △아시아 이머징마켓으로부터의 수입 물가상승 등에 따라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래도 2%를 고집하며 금리인하를 계속 외면하자 일부에서는 ECB가 경기성장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비난이 거세다. 경기 둔화가 심각한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는 특히 불만이 크다. 도이치은행 런던 지사의 토마스 마이어 수석 이코노미스트(유럽 담당)는 "(현실적이지 않은) 인플레이션을 고집할 경우 실질 경제가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끌로드 트리셰 ECB 총재의 선택은 갈수록 어려워지고있다. 하지만 트리셰 총재는 여전히 물가만은 잡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단 일초도 물가 목표를 수정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독일과 같은 고성장 국가의 경우 물가를 잡지않으면 머지않아 성장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근거도 제시하는 상황이다.


트리셰는 지난 8일 "물가 목표를 수정하면 인플레 기대치가 급하게 올라갈 것"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변호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ECB가 물가를 통제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신뢰를 보내고 있다"며 "단지 단기적인 충격에 따라 물가가 목표치를 넘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달 ECB는 민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로지역의 장기 인플레이션이 1.9%로 기대된다는 전망을 발표하기도 했다.

피부로 와닿는 물가는 심상치 않다. 유가, 식료품 가격 급등 탓이다. 지난 3월 물가(연율)는 3.6%나 올랐다. 이는 16년 이래 가장 높다. 바클레이 캐피탈과 소시에떼 제네랄은 "아직 고점이 오지 않았다"고 예상했다.



ECB 안의 이코노미스트들조차도 올해 물가가 2.9%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상황이다. 이는 1993년 이후 최고치다.

그런데도 ECB가 2%라는 수치 목표를 고수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앙은행이 명확한 목표 물가를 제시함으로써 미래의 인플레를 통제권 안에 가둘 수 있으며, 금리결정에 대해서도 뚜렷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연준(FRB)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결국 ECB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2% 목표를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가면극'을 10년동안 해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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