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은 남편의 기를 죽인다?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8.05.2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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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뉴스 속 물가상승을 실감하다

기자라는 직업은 출입처 사람들과 만날 일이 많아 점심 약속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같은 사무실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보니, 일이 바쁘다 보면 종종 혼자 점심을 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근처 가까운 뼈 해장국(감자탕을 1인분으로 따로 담아낸 것)집에 자주 간다. 금방 나오고 간단하게 얼른 먹기가 좋아서다.

언젠가 점심시간. 광화문 근처에 종종 가는 뼈 해장국집엘 갔다. 뼈 해장국에 나오는 밑반찬은 간단하다. 깍두기, 썰어놓은 오이와 풋고추, 그리고 쌈장이다. 해장국이 나오기 전 입가심으로 오이를 한 입 베어 물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이는 내겐 멋진 ‘애피타이저’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집에서 오이가 사라지고 당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물론 당근도 좋은 야채지만, 상쾌한 기분에선 오이에 미치지 못한다. 같은 뼈 해장국이건만 그 맛이 반감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입맛 따라 다르겠으나, 뼈 해장국에는 역시 오이가 잘 어울린다.

그렇다고 반찬으로 나오는 야채를 일일이 따지기가 좀 그랬다. 오이의 자리를 당근이 대신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미처 물어보지는 못 하다가, 나중에 아내를 따라 장을 보다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정확한 시세까진 기억나지 않으나 오이가 당근보다 훨씬 비쌌다.



그 전엔 웬만해도 오이를 썼는데, 감당하지 못할 만큼 오이 값이 올라 어쩔 수 없이 당근으로 바꿨던 것이었다. 한두 개 사먹는 것이라면 몰라도 식당 입장에선 한푼 두푼이 아니었을 테니까. 물가가 오른다는 건 뉴스를 통해 익히 듣고 있었으나, 생활 물가를 몸으로 실감한 첫 번째 경우였다.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핀잔이 돌아왔다. 아내는 남자들이 뉴스 같은 걸 잘 챙겨봐서 평소 아는 척을 해대지만, 정작 세상 돌아가는 물정엔 잘 모르거나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쥐꼬리 월급’ 소리 하기 전에라도 먼저 마누라에게 “갖다 주는 월급은 도대체 어디에다 쓰느냐”는 간 큰 타박 같은 건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훈계도 함께 들었다. 시시콜콜 말을 다 안 해서 그렇지, 요즘 얼마나 살기가 힘들어진 줄 아느냐고 한다.

괜한 소릴 해서 핀잔에다 훈계까지, '후회막급'이었다. 별 수가 생겨 펑펑 벌어다 주지 못하는 이상, 그런 잔소리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아내의 주름은 늘고 남편의 기는 쪼그라든다. 이리 보니 ‘무슨 무슨 경제법칙’ 같기도 하다. 평범한 직장인인 나로서야 당연히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 주말에 장 볼 때, 아내 뒤에서 열심히 장바구니나 들어주는 걸로 때울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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