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시장, 절반의 버블 "80년과 달라"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2008.05.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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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버블 요건 절반만 충족… 이머징국가 수요로 급락 어려워"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주택과 신용시장은 강력한 버블 형성과 붕괴를 거쳤다. 지금 전세계 투자자들은 큰 후유증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중국 증시 역시 버블이 꺼지며 반토막 났다.

다소 결과적인 평가가 되겠지만 주택, 채권, 증시의 버블은 판단이 쉽다.



사상최고가를 연이어 경신하고 있는 원유, 무섭게 오르며 식탁을 위협하고 있는 옥수수 가격. 이들 상품 가격은 버블 국면에 들어섰고 머지않아 붕괴라는 길을 걷게 될까.

◇절반의 버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버블의 사전적 정의를 들며 지금 상품시장이 절반의 버블 상태, 다시 말해 버블을 구성하는 조건중 절반만 충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팰그레이브 경제학 사전' 신판에 따르면 버블은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이 이를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산 가격이 펀더멘털 가치를 초과하는 것'을 말한다.

WSJ는 더 올라갈 것이라는 신념은 확실하다며 다만 급등한 가격이 펀더멘털 가치를 초과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가와 옥수수와 같은 상품시장의 버블은 판단의 기준이 모호하다. 주식이나 채권, 주택처럼 투자를 통해 기간별로 기대되는 이익이 있으면 가치를 측정(밸류에이션)할 수 있다. 중국 증시가 주가수익비율(PER) 60배 수준에서 무너진 게 단적인 예다.


유가는 지난 23일 배럴당 132.19달러로, 일년전 64.97달러에 비해 103% 폭등했다.

그런데 유가의 경우 창출되는 이익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 원유를 사서 팔기 이전에는 계속 발생하는 이익이 없다.

◇수요 견고한데 공급은 제한적..기관 수요 급증
상품시장은 수요는 분명 공급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상품시장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자산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쉽게 팔지 않는다. 오히려 더 사려고 덤벼들 태세다.

지난 2월 미국 최대 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 연금(캘퍼스) 이사회는 2400억달러의 자산중 3%를 상품시장에 투자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상품 소비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연금까지 가격의 상승을 확신하고 베팅에 나선 것이다. 이같은 '투기'(투자와 구분이 어렵다)는 최근 급증했다. 투기는 현물이 아니라 선물시장에서 기승을 부린다.

전통적으로 상품 선물시장은 생산자들이 가격 하락에 대비해 헤지하는 목적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요즘 더 많은 기관들이 헤지보다는 투자를 위해 상품시장에 몰려들고 있다.

헤지펀드 매니저인 마이클 마스터스는 지난주 미상원 증언에서 "기관투자가들이 오늘의 상품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 주요 세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않다. 시카고에 있는 비안코 리서치의 하워드 시몬스는 "상품의 최종 구매자는 투자자라기보다 소비자이기 때문에 투기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상품은 금융자산과 달리 기대치가 크게 반영될 수 없고 결국 수급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유국은 생산에 소극적이다. 하바드대의 그레고리 맨큐 이코노미스트는 "고유가에 따라 기름 소비가 줄고, 기름이 들지 않는 대체 교통수단이 늘어나고 있다"며 "그러나 이같은 조정은 더디게 진행되고 결국 생산자들이 증산에 나서지 않으면서 생산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우려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은 이달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증산 요구를 완고하게 거부했다.

◇80년도 원유 버블 때와 다르다
상품시장이 버블 속에 있고 후유증을 걱정해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1980년 버블 붕괴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유가는 일년만에 150% 급등했다. 자원민족주의를 앞세워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감산에 나서자 유가는 수직 상승했다. 그러나 소비가 줄고 비OPEC 회원들이 증산에 나서면서 유가는 급락했다.

그러나 버블을 인정하는 대부분 전문가들도 지금의 유가상승이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국가들의 고성장에 따른 수요 증가 영향이 크다며 1980년과 지금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인정하는 상황이다. 버블이라고 볼 수 있지만 쉽게 꺼지지 않는 버블이라는 것이다.

뉴욕에 있는 파이오니어 선물의 수석 트레이딩 애널리스트인 스콧 마이어스는 "(유가가 계속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원유시장을 떠나기 어렵다는 우려가 팽배하다"며 "펀드와 같은 큰손들이 원유시장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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