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공사의 해외자원 투자 '혜안 빛났다'

라스라판(카타르)=양영권 기자 2008.05.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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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개발 현장을 가다<2-2> 한국 최초의 해외자원 개발 지분참여

 한국가스공사는 1995년 국내 천연가스 공급망 건설이 거의 완료되자 신규 사업을 찾아 나섰다. 해운회사 지분 투자와 테마파크 사업 등이 거론됐다. 그러던 중 일본 미쓰비시 종합상사가 에너지 사업에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스공사는 국내 천연가스 공급이라는 회사의 원래 취지와도 잘 맞다고 판단해 해외 자원개발에 지분을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카타르석유공사(QP)가 1993년에 설립한 라스가스(RasGas)라는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라스가스는 카타르 반도 북동부, 라스라판 지역에 접한 바다 노스필드에서 천연가스를 추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였다.

 천연가스는 오늘날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20%를 차지하고 있지만 30여년 전만 해도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천연가스는 기체 상태로 존재해 가공이 쉽지 않다. 기체상태로 운송하려면 수요지까지 파이프라인을 건설해야 하고 배로 운반하려면 1기압 기준으로 영하 162도로 온도를 낮춰 액화시켜야 한다.



 이 때문에 천연가스 생산엔 막대한 시설 투자가 필요했다. 1978년 제2차 오일쇼크 이전까지만해도 유가는 배럴당 10달러대. 유가가 이처럼 싼 시절에는 엄청난 투자비가 드는 천연가스는 경제성이 없었다. 원유와 섞여 있는 천연가스는 가끔 큰 폭발을 일으키기도 해 더욱 매력이 떨어졌다.

 노스필드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된 것은 1971년이지만 천연가스 개발을 위한 회사 설립이 22년이 지난 1993년에야 이뤄지고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까지 거의 3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라스가스 홈페이지. 한복을 입은 여성과 남대문 사진을 첫 화면에 배치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태도는 각별하다.라스가스 홈페이지. 한복을 입은 여성과 남대문 사진을 첫 화면에 배치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태도는 각별하다.


 가스공사는 1995년부터 라스가스와 협상을 시작했다. 주목적은 라스가스가 앞으로 생산할 천연가스 구매 계약이었다. 협상에 처음부터 참여했던 김윤생 가스공사 차장은 "처음 협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카타르측은 절실해 보였다"며 "우리와 계약을 맺는데 목을 매는 듯한 인상이었고 뭐든 들어주려 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라스가스는 천연가스 생산설비를 갖추기 위해 많은 자본이 필요하던 때였다.


 가스공사는 1997년까지 계속된 협상 끝에 라스가스의 1, 2번 트레인 프로젝트에 한국 민간기업들과 공동 출자해 지분 5%를 갖고 2024년까지 라스가스에서 연간 492만t의 액화천연가스(LNG)를 도입하기로 했다.

 김 차장은 "당시엔 구매할 물건이 널려 있어서 천연가스 개발에 지분을 참여할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천연가스 시장은 구매자가 우위를 점하는 구매자 시장(Buyer's Market)이었다.



 그러나 가스공사는 당시 세계적인 에너지기업과 연구기관 등에서 에너지 가격의 상승 가능성을 지적한 보고서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에너지 가격이 언제까지나 낮게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자 안정적인 LNG 도입을 위해라도 장기 계약과 함께 지분 참여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카타르측이 라스가스에 출자하는 주주의 신용도를 BBB+ 이상으로 제한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가 신용도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가스공사는 결국 '신용도가 회복되면 정식 주주가 되겠다'는 별도의 계약을 맺어야 했다.

가스공사는 1999년에 라스가스의 주주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신용등급이 회복됐고 2000년 2월에 주식대금을 완납해 정식 주주가 됐다.



 가스공사가 라스가스에 투자한 금액은 총 323억원. 지난해까지 받은 배당금은 총 3473억원으로 주식대금을 완납하고 8년간 10배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특히 가스공사가 지난해 라스가스에서 얻은 수익 913억원은 지난해 가스공사 전체 영업이익 6335억원의 14.41%에 달한다.

 라스가스가 당시 가스공사에 지분 출자보다 더 절실하게 바랬던 것은 장기구매 계약이었다. 가스공사가 1997년에 구매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누구도 라스가스의 LNG 개발사업이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스공사가 맺어준 첫 구매계약은 라스가스가 외국 자본을 도입하는데 큰 힘이 됐다.

 라스가스의 첫 LNG 생산품이 한국으로 출발한 것은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2년여가 지난 1999년 8월이었다. 라스가스는 현재 이탈리아 에디슨가스, 중국석유유한공사(CPC), 미국 엑슨모빌 등 세계 굴지의 회사들과 사업관계를 맺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회사 소개책자 등에 가스공사를 가장 먼저 거론할 정도로 중요한 사업 파트너로 생각한다.



 천연가스 시장은 2005년 이후 공급자가 우위에 서는 공급자 시장(Seller's Market)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 사이 카타르측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LNG 도입량을 확대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쉽지 않다.

그야말로 '돈이 있어도 에너지를 사오기 어려운' 시대다. 에너지가 생산되는 광구에 지분을 참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고 탐사·개발 단계의 광구에 대한 지분에 참여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판이다.

라스가스가 LNG도 생산하기 전인 10년전 투자를 결정했던 가스공사의 혜안이 더욱 빛나는 이유도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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