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송구스럽다", "가슴 아프다", "모두 제 탓이다" 등의 수사를 쓰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특히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청계천 광장에서 촛불 집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는 대목에서는 깊은 회한과 함께 진정성이 베어 나왔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나름대로 충분한 사과를 했다고 본다.
그러나 담화 발표 직후 머니투데이가 온라인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대통령의 담화에 불만족이라는 응답이 86%나 됐다. 반성은 인정하지만 미국과 재협상하라는 국민의 요구에는 무응답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미국 쇠고기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지 예단하기 힘들지만 정부가 국민의 요구를 수용해 미국과 재협상에 나서지 않는 한 사태는 진정되지 않을 것 같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찬성한다. 이를 지렛대로 FTA도 성사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미국 사람들이 먹는 쇠고기만 수입한다는 전제 아래서다.
그러나 미국 쇠고기 사태가 첨예한 대립 전선을 형성했다. 대립의 최전선에는 이른바 ‘고딩’이 위치해 있었다. 쇠고기 사태가 고딩들까지 나서게 한 이유는 그 문제가 가지는 민감성 때문이었다. 청계천 광장에서 첫 촛불 집회가 열렸을 때, 가장 먼저 나온 구호가 “너나 먹어 미친소”였다. 이들은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소는 먹기 싫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머니 부대도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우리 애들에게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는 먹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무슨 좌파고 우파고 이념이 개입될 소지가 있겠는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이기주의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자기중심적인 ‘Y세대’적 논리와 감성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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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 낸 것은 국회도, 시민단체도, 좌파도 아니었다. 이름 없는 청계천의 촛불들이었다. 한국의 고딩 또는 민초들은 온라인 공간을 통해 결집한 뒤 오프라인으로 내려와 시위를 벌였고, 결국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냈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이다. 21세기, 그것도 4800만의 적지 않은 인구를 가진 나라가 원시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셈이다. 이 같은 사례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인터넷의 힘이고, 대한민국의 힘이다.